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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Nov 17. 2023

강사님, 왜 자꾸 손을 들여다 보세요?


차가 생겼다. 일흔 넘으신 시어머니께서 더 이상 운전을 하면 안 되겠다며 가져가라고 하셨다. 있으니까 자꾸 타게 된다시면서. 회색 sm3는 그렇게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와 우리의 첫 차가 되었다. 


어떻게 운전을 하지? 자문도 하고 인터넷에게도 묻고 남편에게도 물었다. 인터넷에서는 운전 연수는 사고나 보험의 문제 등으로 학원만이 합법이라고 알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방문해 내 차로 연수를 받는 건 불법이라는 거였다. 불법이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다들 이용하는 것 같았다. 비용 차이는 꽤 있었다. 학원이 10회에 50만 원 돈이었고, 개인 연수는 30 내외라고 했다. 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둘이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게, 비록 여자 강사님이라도, 희한하게 느껴져서 학원에 가기로 했다.


물론 남편의 반대가 컸다. “헐, 50만 원이라고? 내가 해줄게.” 나는 ‘제발 연수는 남편에게 받지 마세요’라든가 ‘연수받다가 이혼 직전까지 갔어요’ 같은 내용의 인터넷 글을 보여주며, 안 된다고 했다. 돈 달라고 일부러 징징거린 건 아닌데, 친정엄마한테 ‘학원 너무 비싸’라고 했더니 엄마가 돈을 보내주셨다. (엄마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소소하게 징징거릴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로 유명한 xx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운전학원은 잘 돌아가는 공장처럼 관련 과정들이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우리 동네를 포함해 일곱 군데로 셔틀버스까지 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 크지 않은 실내에 수강생들과 직원, 강사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버스 터미널 같았다. 매시간 밖에 있던 강사들이 우루루 몰려와 각자의 수강생들 이름을 불렀다. 강유주님, 김희철님, 누구님, 하고 부르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따라가 도로주행 연습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나의 강사님을 기다리며, 긴장을 잘하는 성격이기에 여자 강사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 강사의 비율은 5%도 안 돼 보여서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남자 강사님이라면 기왕이면 훈남이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그래도 친절하셨으면, 하고 바래 보였다. 

 

모리님,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로 가 한 송이 꽃... 아니 한 명의 운전 연수 수강생이 되었다. 강사님은 60대쯤 되어 보였다. 다른 강사들을 둘러 보니, 내 강사님은 나이가 조금 있으신 듯했다. 하지만 더 많아 보이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이가 많으시면 베테랑이시겠지, 생각하면서 인상을 살폈는데, 선하게 생기시고 말투도 친절하셨지만, 얼굴엔 짙은 그림자 같은 게 드리워져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학원을 빠져나갔다. 면허를 대학생 때 따고 단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으니, 이십 몇 년 만에 운전대를 잡는 거였다. 학원 근처는 한산했으나 도로에 나가게 되자 식은땀이 흘렀다. 

 “왜 안 가요?”

 강사님이 물었다. 나는 악셀을 밟으려다가 강사님께 소리 쳤다. 

 “차... 차가 있어요!”

 그러자 강사님은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 도로에는 원래 차가 있어요.”     

 

겁이 많아서 평생 못 할 것 같은 운전이었는데, 위급 시 브레이크를 밟아줄 강사님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어찌 운전이 되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땐, 엉망진창이긴 해도, 희한하게도 계속 운전을 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 기어다니던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미숙하긴 해도 어찌어찌 걷게 될 텐데, 그런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브레이크와 엑셀로 내 신체가 움직이자, 두 발로 디디며 걸었을 때의 감각이 어땠더라? 순간적으로 잊게 되는 듯했다.

 

그렇다고 운전에 소질이 있다는 건 전혀 아니었다. 오십만 원의 거금을 냈으니 억지로 하고 있을 뿐, 연수 끝나면 그냥 도전해봤다, 에 만족하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가야지, 보험료 냈으니 1년만 갖고 있다가 팔아야겠다, 같은 생각들이 다섯 번의 연수 동안 계속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렇게 발발 떨면서 두 번째 수업을 받고 있을 때, 나는 강사님이 빨간 불에 설 때마다 핸드폰을 열고 들여다 보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도 주식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길게는 아니고, 그냥 잠깐씩, 열었다 닫는 정도였다. 하지만 엄연히 수업 시간이고, 나는 이렇게나 긴장하고 있는데, 자꾸만 폰을 보는 강사님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사무실에 컴플레인을 할까, 강사님께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할 방법이 없나, 생각해 보았다. 

 

다음 세 번째 수업에 가기로 한 날, 마침 아이가 아파, 수업을 며칠 후로 변경하자 다른 강사님이 등장했다. 역시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바뀐 강사님은 폰을 보지 않았다. 아예 들고 오지도 않으신 듯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바뀐 강사님은 말수가 적었다. 하시는 말씀이라고는, 왼쪽이 xx 병원입니다. 오른쪽이 xx역입니다 같은 지명 소개뿐이었다. 둘러보면 표지판에 다 써 있는 것들이었다. 그걸 굳이 또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말 안 하면 썰렁하기 때문일까. 왜 운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으실까? 나는 미숙한 운전 와중에도 별 생각을 다 했다. 예전 강사님은 잔소리가 많았다. 좌회전할 땐 크게크게 돌아요, 라든지, 왜 자꾸 오른쪽 차선에 붙어요, 중심 맞춰요... 귀가 따가울 정도로 하나하나 지적을 했었는데... 1시간쯤 지나가자 예전 강사님이 조금 그립기도 했다. 성격은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근무 시간에 폰을 안 보시는 건 정말 마음에 들어, 라고 생각할 무렵, 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지루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가 보았다. 빨간 불이 길어질 때, 바뀐 강사님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흘깃 곁눈질로 그가 뭘 하나 훔쳐봤다. 그는 손등을 보기도 했고 뒤집어서 손바닥을 보기도 했다. 나는 뭐 상처라도 났나, 생각하며 넘겼는데 그 행동은 반복되었다. 계속 보다 보면 뭐 매직아이처럼 새로운 손금이라도 생겨나는 건지, 그는 차가 설 때마다 자신의 손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두 시간의 수업 동안 그는 지루할 때마다 자신의 손에게 집중했다. 어찌나 자주 손을 들여다 보는지, 차라리 폰으로 주식을 보는 강사님이 ‘정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폰이든 손이든, 뭘 보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계속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 거였다. 일종의 ‘성인 틱’이랄까. 나에게는 이토록 두렵고 긴장감으로 온몸이 굳는 운전이, 그들에게는 오 분에 한 번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루한 일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흥미롭기도 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수업은 다시 첫 번째 강사님과 함께 했다. 이제는 그가 폰을 보는 행위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유능한 강사였다. 그의 잔소리는 필요한 것들이었다. 나중에 몇 년이나 일하셨는지 물으니 30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전자들이 보조석에 달린 브레이크를 자신이 밟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늘 무릎을 접고 있어서 ‘도가니’가 안 좋다고 말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창 혈기왕성한 삼십 대부터 하루 대부분을 보조석에 앉아서 가요, 서요, 를 반복하던 그, 그리고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강사들에게 지루함을 버티는 틱이 하나씩은 있겠지, 왜 없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의 연수를 마치고, 지금도 여전히 운전대 앞에서 발발 떨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제는 ‘급할 땐 운전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자신감은 있다.

     

현대인들은 ‘무언가를 무척 잘하는 것’ 다시 말해 전문가에 대한 선망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엄청나게 잘하게 되면, 지루함과 권태의 감정도 그만큼 커진다. 그림자 혹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십 년 전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아기였을 때, 포대기로 아기띠로 유모차로 아이를 재우기 위해 경보 선수처럼 온 동네를 쏘다닐 때, 다 큰 아이와 친구처럼 손 잡고 다니는 엄마들을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싶었다. 반찬 좀 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사 왔다가 손은 느리고 아이는 보채는 바람에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재료들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뚝딱뚝딱 빨리 요리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라기도 했다.

 

나는 이제 그런 내가 되어 있다. 오이무침이나 불고기 같은 건 계량스푼 없이도 뚝딱 할 수 있고, 아이는 이제 다 커서 키오스크도 해주고, 작은 글씨도 읽어준다. 나는 상상하고 꿈꾸던 능숙한 엄마가 되었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지루함과 권태도 일상의 한부분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건 몰랐다. 폰과 손을 들여다 보는 아저씨들을 보고 난 후, 나는 나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지루함과 싸우는 수많은 틱으로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금 전에 들어갔던 맘카페에 자꾸 들어가 봤던 글 제목을 또 읽고, 화장실 벽에 곰팡이가 원래 많았나, 청소도 안 할 거면서 계속 들여다 보기도 한다. 유투브를 들락거리고, 오지도 않는 이메일을 확인한다.


전인권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20대에는 그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40대가 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힘든 일을 많이 겪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 사치 같기도 하고, 그럴 에너지나 활력도 없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가리는 방법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해가 제일 높을 때 돌아다니며 지루함과 권태의 그림자를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해가 저물 무렵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것들을 보게 되고 보기 싫은 그것들을 잠시 잊기 위해, 폰을 보든지 손을 보든지 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 같은 것들이 필요한 순간도 확실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모 아니면 도’보다도 ‘개걸윷’으로 흘러가고, 또 그럴 때 균형이 잡히기도 한다. 능숙함의 그림자가 지루함이듯 새로움의 그림자는 미숙함이다. 미숙함은 나이가 들수록 완전히 새로운 것들로 판을 갈아엎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럴 땐, 일단 능숙함 두 칸, 새로움 한 칸 정도로 윷판을 돌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뭐, 운때가 맞으면 갑자기 새로움으로 다섯 칸 전진하고, 또 업고 업히다가 완전히 판을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능숙하고 지루하게 돌고 돌아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그 판때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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