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업계의 진단은, 유튜브 영상은 무조건 짧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틱톡과 인스타 릴스, 유튜브 쇼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날 것의 (의미 없는 정말 쌩 날 것의) 영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나영석 PD의 나불나불을 비롯하여 침착맨 및 핑계고의 영상은 러닝타임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생중계 무편집 버전을 올리는 배짱도)
빠니보틀의 부계정 '아무거나 보틀'에서는 이런 현상을 짐작이나 했다는듯이 무려 한 두시간 길이의 영상을 비롯해 세네시간 짜리 무편집 본도 올라와 있으며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중이다. (다른 편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곽튜브와의 케미도 무척 돋보이며 이 둘의 세계관(?)을 알고있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채널이다.)
트렌드의 흐름이 그새 바뀐 것일까. 침착맨의 조언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이유는, 현대인들은 이미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 쌓여, 정보가 압축된 콘텐츠에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래 기사는 긴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대인들의 이유에 대해 보도한 것.)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 콘텐츠는 이제 더 이상 대중의 소구력을 다 한 것일까?! 지식에 대한 갈망이 한 때 유행인 적이 있었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비롯해 지식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빠지지 않던 상황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유튜브 또한 정보의 창구라고 인식했던 시기를 지나, 날 것으로 소통하는 SNS 원래의 역할이 부각되는 흐름으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또한, 이근아 기자가 지적한대로 유재석과 그의 지인들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의식적인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은 고독을 갈망하면서도 그들만의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런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루소는 인간은 고독할 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유재석을 비롯하여 그와 친분있는 출연자들도 연예인이라는 배경을 떠나 완벽하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연출과 특별한 편집이 없는 자연상태 그대로의 핑계고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인 상태에서의 의사소통이 루소가 주장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현대인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를 갈망하는 이러한 현상에 환호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는 ‘욕망을 이성으로 억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대화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들은 핑계고 채널을 통해 적나라하게 발현하고 있었다. 아즈마 히로키가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에서 포스트모던 사회로 진입할수록 인간은 동물화된다고 주장한 것처럼, 유튜브가 만든 생태계 안에서 우리도 단순하고 일상적인 욕망을 핑계고 채널을 통해 이입하고 있는 건 아닐지. 그리고 이런 욕망의 직접적인 가시화가 유튜브 감성의 핵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