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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Nov 17. 2023

꿈에 동생이 나왔다.

마음의 짐을 가진 채

어렸을 땐 동생이 참 예뻤다. 나랑 언니는 아빠를 닮아 눈이 작은데, 동생만 엄마를 닮았다 똘똘하고 큰 눈을 가져 정말 부러웠다. 동생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얼굴에 큰 점이 생겼다. 동그랗지도 않은 모양도 제 멋대로인 큰 점. 그 점이 동생 얼굴을 심술궂게 만들었다. 아니, 내가 그 점을 심술궂게 봤다.


점과 함께 싹이 자라났다. 미움의 싹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잘해줘라. 누나니까 양보해라. 하는 말이 서러웠다. 나는 세 남매 중의 둘째였다. 언니랑 나밖에 없을 땐 분명 동생이니까 내가 언니 말을 잘 들어야 했는데 동생이 태어나니 또다시 동생에게 양보하고 배려해야 했다. 다섯 식구의 서열을 매긴다면 내가 네 번째가 될 줄 알았는데, 동생은 남자라 아빠 다음이 동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꼴찌라고 했다. 그런 동생이 미웠다. 나는 고집불통에 성격이 고약한 누나가 되어 5살이나 어린 동생을 오래도록 미워했다.


하루는 콩콩이(트램펄린을 우리 동네에선 콩콩이라 불렀다.)를 타러 갔던 동생이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엄마한테 크게 혼날 때 외엔 잘 울지 않는 동생이라 언니랑 나는 많이 놀라서 왜 그러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동생은 혼자 콩콩이를 타고 있는데 형들이 자기를 밀치고 뺨을 때렸다고 했다.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 그 형들은 몇 살인데? 나보다도 한참 어린애들이었다. 한참을 씩씩거렸지만, 언니랑 나는 어쩌질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찾아가서 “네가 내 동생 때렸어? 나와!”할 그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 결국 동네에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에게 SOS를 쳤다. 네가 내 동생이랑 같이 좀 가주라. 그렇게 우린 방구석에서 친구 덕에 사과를 받아냈다.


꿈에선 그때의 일이 자주 오마주 된다. 자꾸 동생이 운다. 크고 똘똘한 눈을 한 동생이. 심술 점을 가진 동생이. 그런 동생이 가여워서 나도 따라 운다. 어떤 날엔 동생 손을 잡고 다정히 걷는다. 소풍도 간다.

다섯 살의 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군대도 다녀와 번듯한 청년이 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자라지 못하고 다섯 살로 머문다.


어느 날 언니가 쓴 글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막냇동생은 꿈에서도 늘 네 살이라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꼬마로 남아있다고. 우리는 그 시절의 동생에게 사과하고, 또 용서받고 싶은 걸까. 대학생인 동생은 용돈이 부족해도 두 직장인 누나에게 연락 한 번을 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처럼 큰누나, 작은누나한테 연락해서 “누나 나 용돈 좀 주면 안 돼?” 라거나 “누나 나 치킨 좀 시켜주면 안 돼?”하면 못 이기는 척 챙겨주며 찬찬히 마음의 빚을 갚고 싶은데.


언젠가 쑥스러움을 딛고 사과하고 싶다. 누나가 어려서 그랬다고. 덜 자라서 그랬다고. 그래서 아직도 자라는 중이라고. 그럼, 언젠가 다 자란 동생이 내 꿈에 나와 나를 용서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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