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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Oct 17. 2023

나이키 에어

내가 고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그러니까 2012년쯤의 일이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메이커 제품들이 유행이었다. 빵빵한 노스페이스 패딩이나 나이키, 뉴발란스 신발, 가방 같은 것들. 우리 집은 학교 다니는 아이만 셋이라 메이커 제품을 사주기엔 형편이 빠듯했다. 핸드폰은 늘 보급형. 신발이나 옷은 주로 홈플러스에서 사 입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어렸기에 그런 것들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조금씩 친구들의 옷과 신발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엄마 나 패딩 사줘.

엄마는 나를 데리고 홈플러스 옆 건물인 뉴코아 아울렛으로 갔다.


-엄마 노스페이스는 3층인데.

1층은 주로 이월 상품들을 팔았다. 세일행사를 하기도 했다. 생소한 이름의 매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입어보다 입구에서 오른쪽 통로의 끝쯤에 위치한 매장에서 보라색 패딩을 입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세일해서 9만 원 정도였던 패딩. 가격도 괜찮았고 친구들이 입는 노스페이스 패딩과 비슷해서 나도 좋았다. 패딩 입고 학교 갈 수 있으니까!


새 옷을 입으면 느낄 수 있는 묘한 들뜸이 있다. 새 패딩을 입고 등교한 날, 이건 어디 거야? 하며 은근히 웃는 친구들의 말도 상관없었다. 이게 제일 예뻐서 샀어. 하면 그만이니까. 어쩌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만나면 괜한 위안도 생겼다. 거봐 나만 입는 거 아닌데 뭐.

그런데 이번엔 신발이 문제였다. 신발장 나란히 놓인 신발 뒤꿈치에 로고가 없는 건 나 하나였다.


-엄마 나 신발 사줘.

이번엔 나를 데리고 온갖 메이커 제품이 모인 이월 매장으로 갔다. 커다란 돔 형태의 공간에 메이커 신발이 가득했다. 나는 회색에 빨간 나이키 로고가 박힌, 밑창엔 에어쿠션이 달린 신발을 골랐다.


-엄마, 나 이거 살래. 너무 예쁘지?

이번엔 정확히 기억난다. 그 신발은 11만 원. 할인된 가격이었다. 지금은 11만 원이 큰돈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얼마나 비싼 건지 생각을 못했다. 11만 원짜리도 못 사줄까. 엄마는 뉴발란스도 보여주고 아디다스도 보여주고 이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물었다. 나는 완강히 처음 고른 나이키 신발을 고집했다.


-너무 비싼데….

한숨을 쉬며 신발을 계산하던 엄마의 모습이 어제일처럼 선명히 기억난다. 당시엔 불편한 마음을 그만큼 오래 신으면 되지! 하면서 애써 모른 척했다. 신발을 샀으니 그저 신이 난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금 당장 11만 원의 지출이 생긴다면 나는 덜컥 결제할 수 있을까. 혼자 벌어 혼자 쓰는 내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비쌀 따름인 그 나이키 신발. 당시 얼마나 큰 지출이었을까. 5만 원짜리 신발도, 6만 원짜리 신발도 많았는데, 그 어떤 것도 성에 차지 않게 했던 나이키에어. 신발 한 켤레에 얼마나 많은 걱정들이 생겨났을까. 하는 생각이 벌컥벌컥 머릿속 문을 열고 나온다.


집에 가니 엄마가 못 보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다이얼을 돌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끈 조절이 되는 등산화였다. 시장에서 샀다고 했다. 끈 조절 장치는 이미 고장이 나서 발목이 헐렁했다.


메이커 옷은 못 입었지만, 제철음식은 안 먹어 본 것이 없다. 전국 곳곳 계절마다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어른이 되고, 무언가를 배우고, 그로 인해 성장했다고 느낄 때마다 그 정성과 노력이 습관처럼 상기된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좋은 신발을 골라야지. 좋은 옷을 선물해야지 다짐한다. 그간의 걱정을 훌훌 털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년의 삶을 뛰어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부모님 손을 잡고 신발 사러 가야겠다. 이왕이면 나이키나 이왕이면 중년들에게 인기 있는 비싼 신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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