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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함께 즐기는 올드팝 향연

2025.11.18 폴 앙카 멕시코시티 콘서트

by 염동교

2025년 11월 18일 멕시코시티 Auditorio Nacional에서 열린 폴 앙카 콘서트에서스모키 로빈슨, 다이애나 로스 같은 1940년대생들에게서 느꼈던 건강함과 정정함을 확인했다. 2분여간 70년 역사를 돌아보는 아카이브 영상이 흘렀고 관중이 주인공 등장을 기대했다. 갑자기 시선과 아우성이 무대 3층으로 쏠렸다. 관람석에서 출현한 앙카가 스테이지로 내려오며 ‘Diana’를 불렀다. 시그니쳐 송이자 1957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앙카 입문서로 훌륭한 1963년 컴필레이션 < Paul Anka’s 21 Golden Hits >에 수록되었다.


불과 열어섯에 취입한 이 노래는 앙카가 직접 썼다. 그는 실로 위대한 작곡가로 어쩌면 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이 아이돌 팝스타, 보컬리스트보다 클는지 모를만큼 무수한 명곡을 집필했다. 본인도 콘서트 내내 곡 제공자의 면모를 강조했고, 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커버했던 ‘Jubilation’과 웨일스 가수 톰 존스에게 첫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안겨준 ‘She’s a Lady’에서 그가 얼마나 곡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체감했다.

톰 존스가 프린스의 ‘Kiss’를 재해석했다면 폴 앙카는 ‘Purple Rain’의 절절함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보랏빛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백드롭을 배경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원곡과 다른, 조금 보수적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가 있는 재해석 버전을 선보였다. 곡이 나온 1984년 이미 불혹을 넘겼던 그는 ‘Purple Rain’을 당시 어떻게 여겼을까? “진홍색 비”와 더불어 이색적 선곡은 너바나 리메이크 ‘Smeslls Like Teen Spirit’. 2005년 작 < Rock Swing > 수록곡으로 여기에 본 조비 ‘It’s My Life’와 빌리 아이돌 ‘Eyes Without a Face’, 심지어 사운드가든 ‘Black Hole Sun’까지 리메이크했다. 아티스트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관중들은 세부 항목에서 감동받곤 한다. 노래 사이사이 후안 가브리엘과 호세 호세 등 멕시코 아티스트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공연장으로 걸어가던 중 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발길을 멈췄고, 얼른 샤잠 검색해보니 나온 이름이 후안 가브리엘이었는데. 이런 소소한 추억이 참 소중하다. 폴 앙카를 라틴팝 전문가수라고 칭하면 무리겠지만 ‘’Eso Beso (That Kiss)’같은 보사노바 풍 곡에는 중남미 향기가 배어 있다.


“존경하는 인생 멘토에요”라던 프랭크 시내트라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와 ‘My Way’를 연달아 불렀다. ‘My Way’는 잘 알려진 대로 본디 샹송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가 1967년에 취입한 ‘Comme d’habitude(평소대로)’란 곡을 미국식으로 변경한 작품이다. 앙카가 쓴 영어 노랫말이 곡의 분위기를 결정했으니 시나트라가 26년 아래 동생에게 나름의 빚을 진 셈이다. 앙카 인생의 빛나는 순간임은 자명하다.

앵콜에 앵앵콜로 어찌보면 마지막이 될 뜨거운 만남을 되새겼다. 물론 앙카는 정정했고 중반부 반응이 열렬한 3층 어느 관객에게 “다음에 멕시코 시티로 돌아온다면 1층 1열 좌석을 제공하겠다”라는 스윗한 한 마디를 남긴 앙카는 미국 알앤비 가수 빅 메이벨을 커버한 ‘Whole Lotta Shakin’ Goin’ On‘에서 제리 리 루이스처럼 선채로 불같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남김없이 불꽃을 태웠다.


내 바로 앞 열 백발 할머니 관객의 눈망울을 보았다. 일순간 타임머신 타고 60년 전의 소녀로 돌아간 그녀는 예전처럼 꺅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구를 순 없어도 “내적 댄스”를 추며, 옆의 손녀에게 “그땐 그랬지”를 들려주며 추억여행을 만끽했다. 손녀는 어땠냐고? ‘Put Your Head On My Shouler’와 ‘Crazy Love’를 꼭꼭 따라 부르며 결코 효도만을 위해 온 게 아님을 나타냈다. 상투적이지만 “음악은 세대를 묶는다”라는 문구가 어찌 떠오르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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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마 전에 뜬금없지만 폴 앙카 공연 다녀왔어요, 정정하더라고요”라고 함께 방송하는 가수 김종서에게 말을 건넸다. “땅땅하고 다부진 체격이라 장수할 타입, 오래도록 기량을 유지할 느낌이야”라는 그의 묘사에 묘하게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 헤진 라이선스 LP 재킷에서 보았던 미소년은 ‘님과 함께’ 남진을 상기하는 정력가로 변모했다. 그을린 얼굴과 여전히 단단한 상체가 주는 카리스마는 팔과 다리를 거침없이 휘젓는 제스처와 더불어 “적어도 5년은 거뜬하지 않을까?” 신뢰감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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