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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들은 너무 호들갑스럽다

by 호밀밭의 사기꾼

라고 생각했다.

그저 '두 발로 혼자 뛴 것' 하나로 세상 모든 이치와 진리와 지혜와 깨달음과 통찰과 깊이와 순리와 재미와 의미와 혜안을 모두 얻었다는 듯이 유난스럽게도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전히 그들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곧 그들처럼 호들갑을 떨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것은 비난도 비판도 냉소도 아니다.


몇 년 전인가 달리기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 왜 달리려고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뭔가 운동은 해야겠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배우고자 하는 에너지도 없었을 과거의 나새기, 그냥 운동화 신고 밖에 나가 뛰어나 보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뛰지? 목적도 없이? 왜?

뛴다는 행위에 대한 의문은 너무나 많았다. 일단 내 신체는 물리적으로 뛸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적어도 성인이 된 후에는 뛰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물론 나도 뛰어본 적은 있다. 초중고 시절에는 운동신경이 꽤 괜찮았고 체육 실기 점수는 늘 우수했다. 100미터 달리기도 꽤 빨랐고, 멀리 뛰기 선수로도 뽑힌 적도 있고, (당시에는)키가 크다며 농구부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성장기 유소년이 흔히 경험하는 에너지 발산의 덕을 본 것일 뿐, 그게 내 신체 능력을 대변해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 이후, 거짓말같이 몸은 더 이상 '생존에 필요한 움직임이 아닌, 일부러 움직이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의지가 그랬겠지만, 여기서는 몸이 그렇게 멈춰버렸다고 믿어보겠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나가, 목적도 없이 뛰어보겠다는 결심이라니. 그 결심이 너무도 낯설어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누구야, 누가 나한테 달리기하라고 시켰어.

그 순간 내가 가장 걱정했던 지점은, 지나가던 사람이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양팔을 앞뒤로 치면서 마구 뛰어가기 시작하면 너무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였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기 위해, 공원을 산책하는 이들이 내 곁을 조용히 지나치기만을, 한참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발을 굴렸다. 헛- 둘- 헛- 둘-


아니 미친 거 아냐? 사람이 뛰는 게 가능해? 말도 안 돼. 15초가 되기 전에 나는 퍼졌다. 목에서 피맛이 나고 숨이 차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또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니, 사람이 왜 뛰어야 하냐고. 내 육중한 몸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낼 공원의 보도블럭이 걱정됐다. 진짜 말도 안 된다. 세상엔 못 뛰는 사람도 있는 거다. 그게 나다. 나는 5분 만에 그런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 근데 달리기하겠다고 운동화도 샀는데 1트만에 포기하는 건 좀 쪽팔리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다음 날, 또 다음 날,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런데이 앱을 켜고 초보자용 가이드를 들으면서 그대로 하면 된다길래 좀 더 용기를 내보았다. 결과적으로 '초보자용'이라는 것은 나를 더 큰 절망으로 이끌었다. 초보자용조차 나는 따라갈 수가 없구나. 달리기와 걷기를 교차하며 반복하는 것이라는데, 나는 바로 그 초보자가 달리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헬스장에서 트레드밀도 타고 러닝도 꾸준히 해서 마라톤 대회도 나가던데. 역시 또 나만 늙어가고 있구나. 그 어떤 준비도 필요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달리기조차 할 수 없는 몸이라니. 이제 그만 희망을 버려. 포기하면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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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로부터 수년 뒤,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나는 테니스와 복싱과 풋살과 웨이트를 (재미로만) 하는 운동 뚠뚠보가 되었다. 하필이면 굉장한 기초체력이 필요한 고강도 운동만을 배우게 된 탓에 그 어느 종목 하나 제대로 못하는 바보 상태이지만, 여전히 나는 잘하고 싶다. 한 가지만 집중해야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다 재밌고 다 하고 싶은 걸 어떡하나. 모르겠다, 일단 기초체력부터 키우자.


그렇게 나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멋진 운동화를 샀다. 남편도 꼬셨다. 남편에게도 멋진 운동화를 사줬고 이번에는 같이 뛰자고 했다. 주말 저녁 공원에 나간 이 뚠뚠보 부부는 조잘조잘 수다를 떨면서 뛰었다. 몇 걸음 뛰고 금방 지쳐서 걸어버리는 남편을 채찍질하며, "뛰어! 뛰라고!"를 외치며 나도 "뛰었다."

그렇다, 내가 뛰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3km를 내리 걷지 않고 뛰었으며, 심지어 숨이 차지도 않아서 남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엥, 이게 뭐지. 나 어떻게 뛰었지.


지난 몇 년간 이것저것 운동을 찍먹해보는 동안, 그리고 무엇보다 풋살을 하며 공을 보고 질주하는 동안 심폐지구력이 약간 나아진 것이다. 와, 나 뛰었어. 숨 차지 않고, 다리가 아프지도 않고, 3km를 뛰었어. 그 뒤로 자주 계속해서 뛰다 보니 5km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나도 이제 러닝을 통해 세상 모든 이치와 진리와 지혜와 깨달음과 통찰과 깊이와 순리와 재미와 의미와 혜안을 모두 얻었다며 유난 좀 떨어도 될까.


물론 아니다. 사실은 아직 멀었다. 나는 뛰는 게 지루하다. 뛰는 내내 '내가 왜 뛰고 있지?'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친구들은 러닝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하는데 아니 근데 있잖아 나는 나랑 싸우기 싫어. 풋살 친구들은 호밀꾼 쟤는 러닝할 때 발 앞에 풋살공을 놓아줘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니 근데 애드라 골대가 없잖아. 공을 쫓았으면 골을 넣어야지.


도심 속에서 홀로 뛰고 있으면 내가 지나치는 행인들이 신경 쓰인다. 공원에서 뛰고 있으면 벤치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내가 저 벤치에 앉은 사람이라면, '저 사람은 왜 뛰고 있을까? 목적도 없이'라는 의문을 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스포오츠라 함은 뭔가 대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승부가 나야 하는 것이다. 룰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단련하고 연습해서 서로가 약속한 대로 무언가를 해서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스포츠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프로 체육인이 아닌 일반인이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고독하게 몰두하며 기록을 올리는 것에 집중한다는 행위에 여전히 잘 이입이 되질 않아서 그렇다.


자꾸 하다 보면 재미가 생기나? 달리기의 '재미'란 무엇일까? '오늘도 잘 뛰었어 나 자신' 하며 셀프 토닥토닥해주는 기분을 즐기는 것인가? 하여간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일단 계속 뛰어보겠다. 10km쯤 쉬지 않고 뛰게 되면 알게 될지도. 그래서 나도 달리기에 인생이 있다며 호들갑 떠는 러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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