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쯤 뛰면 러닝의 재미를 느끼며 인생을 좀 아는 척해도 되냐는 헛소리를 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고, 그사이에 나는 거의 뛰지 않았다(대반전!!!). 마음은 정말 뛰고 싶었지만 이유는 많았다. 어떤 날은 풋살을 연속으로 해서 다리가 아팠고, 어떤 날은 테니스 랠리에서 무리를 했고, 어떤 날은 하루쯤 운동을 쉬어야 할 것 같았고, 어떤 날은 웨이트를 하고 나니 기운이 없었고, 어떤 날은 일이 바빴고, 어떤 날은 나가기 싫었다(이것도 이유로 쳐준다면 좋겠다앙).
달리기를 매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달리기가 싫은가? 그렇진 않다. 달리면 좋은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일단 나가는 게 큰일이고, 달리기 시작하면 5분 정도는 아 괜히 뛰기 시작했다며 후회도 한다. 내가 가진 건 3km쯤 지나야 지금까지 뛴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뛰는 정도의 열정이다.
아니 그렇게 싫은데 왜 뛰나? 뛰고 나면 좋다. 엄청 좋은가? 아니다 엄청 좋은 건 아닌데 뛰었다는 사실 자체는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뛰지 않아도 좋음을 느낀다(그게 대체 뭔 소리애오). 그러니까 나는 '뛴다'는 에너지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달리기 안 한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입니다.) 남들이 뛰는 걸 보면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내가 왜). 아무 말 없이 그냥 뛰기만 하는 사람의 영상을 넋놓고 바라본다. 대리 체험은 짜릿하다.
한 달 가까이 달리기를 안 했는데 그사이에 운동화는 늘었다. 그냥 운동화도 아니고 러닝화를 계속 샀다. 러닝을 하지 않고 러닝화를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여기 있다.
누워서 운동화를 산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기 싫다는 마음과 달리면 좋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면 힘들다는 고통과 잘 뛰는 내 모습에 대한 상상과 못뛰는 내 현실에 대한 직시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운동화를 산다. 장비를 사기만 해도 이미 그것을 수행해버린 듯한 만족감. 그 장비가 도착하기도 전에 짜게 식어버릴 의욕의 정체를 알면서도 바로 다음 장비를 검색하고 있는 빠른 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운동화를 주문하는 몸은 아직 침대에 있다.
달리기는 하지 않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책은 읽었다. 그 유명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는데 제목이 전부인 책이었다. 그냥 달리기를 말할 때 그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맥락 없이 풀어놓은 게 다였다.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거의 경전처럼 삼던데 그 정도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달리기 자체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하루키의 담백한 태도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겠다. 그건 하루키 에세이의 전반적인 디폴트무드 같은 것이니까.)
갑자기 추워져버렸다. 더울 때 뛰는 것보다는 추울 때 뛰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달리지 않고 있다. 내일은 뛰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뛰려고 했는데 안 뛰면 자신에게 실망하지만, 뛸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뛰게 되면 스스로가 대견하기 때문이다(는 뻥이다).
이번 주말에는 과거의 나 자신이 신청해놓은 마라톤대회에 나가야 한다. 겨우 5km 건강달리기 코스지만 누워서 운동화만 산 자에게는 조금 긴장되는 이벤트다. 하여간 이제 말은 그만하고 좀 뛰어야겠다. 이 괴상한 달리기와의 밀당은 좀 끝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