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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치에 있다

나는 이런나라에서 살고 싶다!!

by 와와우

나라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치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CjBTfLXLs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인류의 정치와 사회를 관통해온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역사 속 수많은 사상가들은 국가의 목적을 정의하려 애썼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 의미를 되묻는다. 이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대답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국가는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며, 그 존재 이유는 인간 삶의 가치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있다.

국가는 인간이 불안정한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안전과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동체적 장치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생존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공정하게 분배하며,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이 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복지국가의 발전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단지 영토와 군사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을 얼마나 보장하는가에 따라 그 정당성이 결정된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교육과 의료, 주거, 환경 등 인간의 기본적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정책들은 국가가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더 나아가 국가는 단지 생존이라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이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표현의 자유, 평등한 기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인간이 각자의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이며,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촉진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만약 국가가 특정 이념이나 세력의 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해치는 폭력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국가라는 이름을 빌린 억압일 뿐이다.

오늘날 기후위기, 전염병, 전쟁, 인공지능 등의 새로운 위협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생존의 조건은 더 복잡해졌고, 인간은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인간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자, 연대의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결국,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힘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그 삶이 존중받는 질서 속에서 피어난다. 국가는 존재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며, 인간의 생존과 삶의 가치 그 자체다.

권위주의 국가는 일반적으로 소수의 권력자, 또는 단일 정당이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국가는 ‘국가의 안보’나 ‘질서 유지’를 앞세우며 개인의 생존권, 표현의 자유, 정치적 참여를 제한한다.

예를 들어,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념 아래 주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통제하고,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경제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 소수 민족의 권리, 언론의 자유 등에서 심각한 제약이 존재한다.

이들 국가에선 국가가 국민 위에 존재하며, 국민은 국가 이념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상이 철저히 훼손된다. 생존과 존엄이 보장되기는커녕, 권력자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인간이 도구화된다.

종교국가의 경우, 국가의 통치 정당성은 신이나 신성한 법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대표적으로 이란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통치되는 신정 국가다. 정치 지도자인 최고지도자(아야톨라)는 종교적 권위를 통해 국가 운영 전반을 통제하며, 개인의 삶은 종교적 규율 아래 놓인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국가의 존재 목적이 인간의 자유로운 삶보다는 ‘신의 뜻’이나 특정 종교의 도그마 실현에 맞춰진다. 이는 종종 여성의 권리, 성적 소수자의 존재, 종교적 다원성 등을 철저히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종교국가 역시 ‘생존’이라는 측면에서는 제한적일 수 있다. 특정 신앙 체계에 속하지 않거나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생존권과 시민권에서 배제되며, 국가가 특정 종교의 이익을 우선할 때,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권위주의 국가와 종교국가는 국가의 목적이 인간이 아니라 이념(정치적·종교적 체계)의 유지에 있는 구조다. 이런 체제에서는 생존 자체가 이념의 순응 여부에 따라 허용되거나 거부되며, 국가란 본래 인간의 안전과 자유를 위한 조직이라는 근본 목적이 사라진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이상은 국가는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생명·자유·존엄을 지키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는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 발전 과정에서 민중의 피로 물들었고 지금도 완전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국가의 정당성, 나아가 국민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가 나아가야 하는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도구다.” 이 단순한 명제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정신이자, 모든 공공 권력의 존재 이유를 규정하는 원칙이다. 국가는 특정 이념이나 종교, 집단의 이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첫째 임무다.

하지만 현실 속 권위주의 국가나 종교국가는 종종 국가의 목적을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전도시킨다. 국가의 안보와 통제를 명분 삼아 인간의 생존과 자유를 제한하고, 특정 신념 체계에 순응하지 않으면 시민권조차 부정하는 모습은 ‘국가’라는 이름에 담긴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국가를 지향해야 할까. 그 답은 우리의 전통 속에도 명확히 존재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 곧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념은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 지켜온 국가 철학이다. 이는 단지 민족의 건국 신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모든 인간의 삶에 실질적인 유익을 줘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가치를 품고 있다.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은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배움을 통해 자립하게 하며, 생계를 위한 기회를 보장하고, 공정한 제도를 통해 억울함 없는 사회를 구현하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고, 인간에게 해가 되는 국가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고 또 다짐해야 한다. 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답은 변함없다. 국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인간의 생존을 중심에 두고, 모든 제도와 정책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이유이자, 가장 강력한 정당성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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