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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과 선순환 구조의 완성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싶다!!

by 와와우

지속가능성과 선순환 구조의 완성


https://www.youtube.com/watch?v=C6wBryH5CoA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흔히 듣는다. 환경 정책, 경제 개발, 기업 경영, 심지어 인간관계까지도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단지 오래가는 것, 혹은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존재가 자기 자신과 타자 모두를 지키며 존속할 수 있는 내적 질서를 갖춘 상태를 뜻한다.

그 핵심에는 ‘관계’가 있다. 지속가능한 존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와의 건강한 관계, 스스로에 대한 책임, 그리고 순환적인 구조를 통해 유지된다. 이를 우리는 ‘선순환 구조’라고 부른다. 선순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서로를 살리고 확장시키는 유기적 흐름이다.

자연의 생태계는 그 가장 근원적인 예다. 빛, 물, 흙, 생물은 끝없는 순환 안에서 서로의 자원이 된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의 생명을 돕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죽음조차도 또 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된다. 이는 단순한 기능적 효율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이 선순환의 구조는 인간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경제에서도 소비와 생산이 과도하게 일방적일 때 파국이 온다. 인간관계에서도 주고받음의 균형이 무너지면 지속은커녕 고통만 남는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선순환 구조 위에만 성립할 수 있으며, 그 구조는 ‘이기심이 아닌 상호 돌봄’에서 비롯된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존엄을 “목적 자체로 대우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했지만, 현대의 지속가능성 철학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순환을 통해 공존하는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윤리와 생태, 경제와 교육이 만나는 지점이다.

‘지속가능한 삶’이란 결국 무한히 축적하거나 정체된 삶이 아니라, 선순환의 흐름 속에서 자신과 타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거기엔 절제가 있고, 배려가 있으며, 미래에 대한 책임이 담겨 있다.

선순환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이자, 우주의 구조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우리가 그 흐름을 거스를 때, 파괴와 고립, 단절이 시작된다. 반대로 그 흐름에 자신을 놓을 때, 우리는 다시 조화를 경험한다.

지속가능성과 선순환은 단지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태도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삶은 순환 속에 있는가, 아니면 고립과 착취 속에 있는가? 이 질문에 진실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가능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환경, 경제, 기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자원 고갈, 사회 불평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는 인간 존재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은 필연적으로 ‘지속가능한 구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의 개념이 단순히 ‘지속됨’이라는 현상적 의미를 넘어서, 존재와 관계의 윤리적·형이상학적 구조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고찰해야 한다. 특히 선순환 구조(virtuous cycle) 개념을 통해 지속가능성의 기반 조건을 분석하고, 이를 자연, 사회, 존재론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지속가능성은 일반적으로 “미래 세대의 필요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브룬틀란트 보고서, 1987).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인간 존재의 ‘시간 속 지속성’ 이상을 내포한다. 지속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존재 간의 조화로운 관계, 즉 자기보존(self-preservation)과 타자 배려(alterity)의 균형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이데거(M. Heidegger)가 말한 ‘현존재(Dasein)’가 항상 ‘세계 내 존재’로 열려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존재는 타자 및 환경과의 상호관계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은 독립적 주체의 힘이 아니라,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과 관계적 구조 위에서 형성된다.

선순환(善循環, virtuous cycle)은 단순한 순환(repetition)과는 구분된다. 전자는 각 순환이 다음 순환을 긍정적으로 강화시키는 구조를 말하며, 이는 생태계, 경제, 심지어 인격 발달의 과정에서도 발견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반복적 실천이 덕(arete)을 형성하고, 덕이 다시 올바른 행위를 낳는 선순환을 설명한 바 있다.

자연 생태계는 이러한 선순환의 전형적 구조다. 생물 개체들은 상호 의존적 생태적 순환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며, 폐기물조차도 다른 존재의 자원이 된다. 이러한 체계는 지속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비선형적 구조로, 일방적 투입과 소비가 아닌 순환적 가치 생성의 메커니즘이다.

철학적으로 이는 존재가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적이고 상호작용적인 '네트워크적 실존'임을 드러낸다. 즉, 지속가능성은 존재가 '순환 안에 있을 때'에만 성립 가능한 조건이며, 이 순환은 반드시 선한 방향성을 내포할 때에만 유지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생산 체계, 기술의 발전, 자원의 과잉 소비 등으로 인해 지속가능성과 선순환 구조를 급격히 위협받고 있다. 경제 시스템은 종종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vicious cycle)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소득 불균형이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빈곤 재생산을 야기한다.

이러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 시스템 자체를 선순환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교육, 복지, 환경, 기술 등이 각자의 목적 실현을 넘어 타 목적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재조정될 때, 전체 시스템이 지속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이해 방식 자체가 변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인간은 자연의 정복자나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 선순환적 질서 속의 참여자이며, 그 윤리적 책무는 단지 자기 보존이 아니라 공존과 배려의 구조 유지에 있다.

지속가능성과 선순환 구조는 단지 실용적 전략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존재는 순환을 통해 지속하며, 그 순환은 윤리적 방향성을 띨 때에만 긍정적이다. 현대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우리 존재의 방식, 관계의 구조, 윤리의 원리를 재정립하는 작업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사회는, 제도는 과연 선순환 구조 안에 있는가? 그리고 그 구조는 타자의 생존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미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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