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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 Jan 24. 2023

남편의 기똥찬 '명절 아이디어'

워킹맘 기자의 삶

올해도 다이내믹한 나의 설 연휴 근무표는 명절을 2주 앞두고 확정됐다.

이미 기차표도, 비행기표도 모두 '매진'.


난 지난 추석 때 역귀성으로 겪었던 악몽이 떠올랐고,

연휴가 한참 남았는데도 명절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시댁으로 내려가버리면 그만인데,

시부모님이 역귀성을 하시게 되면

풀근무를 하면서 오셔서 드실 음식 준비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

 

A부터 Z까지, 눈에 띄는 집안 곳곳이 스트레스였다.  


그런 나의 '분노 게이지' 상승세를 읽은 남편이 결국 묘수를 짜냈다.

바로 시댁과 우리 집 중간 지점으로의 '여행 플랜'을 짠 것이다.


일단 리조트를 수소문한 남편은 나름 가족친화적인 리조트 한 곳에 방 2개를 예약했다.

방 하나는 우리가, 또 다른 방 하나는 시부모님이 묵으실 곳이었다.


리조트다 보니 간단한 음식 조리가 가능해 떡국 재료를 챙겨가서 해 먹어도 좋았다.


그리고 남편은 초등학생 '자연농원' 시절 와본 게 전부라는

에버랜드 방문 계획도 세웠다.


특히 '사파리 스페셜 투어'를 예약했는데,

6명이 펠리세이드를 타고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도 주고

가까이에서 동물들과 교감하는 25만 원짜리 프로그램이었다.


가격이 비싼 데다가, 워낙 예약이 풀이라 자리 잡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는데

남편이 며칠 사이트를 붙들고 매달린 끝에

결국 좋은 시간대로 취소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원이 6명이라

우리 가족들 중 한 명이 탑승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나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다.(?)


모두가 즐겁게 사파리 투어를 떠난 그 시각,

바로 옆 카페를 찾아들어가

오랜만에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음미했다.



남편의 '기똥찬 명절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완성된 순간이기도 했다.



날씨도 크게 춥지 않은 데다, 사람도 없어서

수많은 놀이기구를 대기 없이 계속 타고 또 탔다.


평소 정말 보고 싶었던 판다도 실물 영접하는데 성공!


양지바른 곳에 앉아 대나무를 한없이 씹어먹는 판다의 모습을

멍-하니 관람했는데,

판다 입 안으로 씹혀 들어가는 대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등바등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퍼덕이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그저 저 판다처럼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삶이 최고가 아닌가 하는

'인생무상'을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며느리들은 '슈퍼우먼'이어야 한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집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고, 요리도 잘해야 하고, 돈도 아껴 써야 하고, 시부모도 잘 모셔야 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 둘을 낳은 워킹맘 며느리로 살아보니

그런 며느리는 결코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적당히 중간을 유지하며 사는 것뿐,

모든 걸 다 해내는 며느리란 있을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내려놓았을 때

서로가 행복한 명절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 시댁은 내가 결혼하자마자 모든 제사를 절로 보내신 어머님의 대결단 덕분에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제사를 지내야 했다면, 남편의 이런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로 남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치원생 아들에게 이번 설 명절 무엇이 가장 재밌었냐고 물었더니

"호랑이에게 맘마 준 거요! 호랑이가 닭고기를 으드득으드득 씹어먹었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래.

3대가 모두 행복한 명절이었던 것으로!


2023년 첫 명절은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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