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와이에서 살아남기
이방인의 하와이 생활: 치열한 생존 게임
하와이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게 웃으며 말한다.
“좋겠다.”, “매일 바다 보겠네.”, “거기는 진짜 파라다이스아니야?”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별 볼일 없는 하루를 떠올린다. 하와이는 천국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바다는 청명하고 아름다우며, 날씨는 대부분 맑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친다. 여행지로는 천국이라는 단어가 걸맞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주자로 살고 있다. 완벽한 파라다이스의 주민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말이다.
여행자들에게 하와이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축제장처럼 보이지만, 이 섬에는 엄연히 '울타리'가 존재한다. 하와이의 거친 파도가 섬 외부에서 온 모든 것을 튕겨내듯, 나 또한 이 공동체의 깊숙한 물결에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지만,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보이지 않는 경계선 위에 머물러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이 땅이 가진 고유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단어나 대화 속에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시간의 흐름과 문화적 뿌리가 담겨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내가 이 섬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든 결국 외부인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벽 외에도, 나를 이 파라다이스의 '진짜 삶'에서 끊임없이 멀어지게 하는 것은 바로 지극히 현실적인 물가라는 장벽이다. 여행자들에게 하와이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풍요의 섬이지만, 하와이 주민으로서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나에게는 모든 일상이 예산을 짜고 물건값을 비교해야 하는 치열한 생존 게임의 현장이다.
하와이는 미국 내에서도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곳이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압박은 식탁 위에서 시작된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섬이라는 특성상, 신선한 식료품 가격은 한국에서 상상했던 물가 기준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머릿속으로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이것저것 카트에 넣다보면, 원화로 몇 십만원은 금방이다.
더욱이 이 곳에서 외식은 더 이상 즐거운 여가 활동이 아니다. 메뉴판에 적혀 있는 가격에서 늘 세금과 팁을 합산해야 한다. 여기서 간단한 브런치 한 번이 한국에서 그럴싸한 저녁 식사 비용을 훌쩍 넘긴다. 덕분에 외식이란 기분 따라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닌, 부담스러운 사치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직접 장을 보고 만들어서 먹는게 싸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H마트에서 계란 12개가 들어있는 작은 트레이가 10불 씩이나 하니까. 그러니 식재료를 아끼고, 마트별 할인 정보를 꿰뚫으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세일 품목'을 찾아다니는 것이 내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됐다. 주거 비용에 대해서는 말 할것도 없다. 어마무시한 월세와 관리비는 이 아름다운 섬에 머물기 위해 매달 치러야 하는 가장 크고 무거운 대가이다.
파라다이스의 수많은 그림자
하지만 이 물가라는 현실적인 장벽 외에도,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아이의 병원 문제, 복잡한 의료보험 시스템, 운전면허 갱신 같은 사소한 행정 처리 하나도 한국에서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영어는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갑자기 맞닥뜨리는 전문 용어 앞에서, 나는 매번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낀다. 미국 메인랜드 내 대도시와는 달리 통역 인프라 또한 미비하여, 중요한 순간마다 모든 소통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곳의 시스템은 이방인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하와이는 선택지는 적고,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가며 한 번 익숙해진 생활권 안에서 계속 움직이게 된다. 그덕에 미국 내 다른 주에 비해 안전하다고 느끼면서도, 좁은 선택의 폭과 지원 시스템에 답답함을 몸소 체감하기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외국인이고, 엄마이고, 아내이고, 그리고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그냥 나'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느낌으로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섬에 머무르는 이유
이 모든 고단함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 머무른다. 왜?
그것은 바로 수천 년 동안 이 섬에 뿌리내린 고유한 역사와 자연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다. 이른 아침, 망망대해를 찢고 솟아오르는 웅장한 태양의 에너지를 를 마주할 때, 혹은 머리 위로 별이 미친듯이 쏟아지는 마우나 케아의 적막한 밤을 경험할 때, 내가 가진 고민들이 얼마나 작고 일시적인지 깨닫는다. 광활한 하와이의 하늘 아래에는 왕국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격동의 시간이 잠들어 있다. 그 오랜 시간의 흐름과 장엄한 자연 앞에서, 나는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감을 잠시 잊고 존재의 근원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이 섬의 높은 장벽과 낯선 관습 너머에는, 알고 보면 인간적인 온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알로하 스피릿(Aloha Spirit)'이 낯선 이에게 완벽히 열린 문을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느긋함과 순수함은 지칠대로 지친 어깨를 잠시나마 쉬게 한다. 그들의 순박한 미소와 태도 속에서, 나는 이 섬의 깊고 진실된 인간미를 발견한다.
이 기록은 하와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자랑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어떻게 하루를 버티고 성장하는 지, 그 속에서 이 섬의 진정한 가치와 위안을 발견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쓴 오늘도 나는, 천국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살고 있다.
하와이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