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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 끝나지 않을 비정성시

영화 <비정성시> 리뷰

by 민드레


비정성시(悲情城市)는 비애에 찬 도시를 뜻한다. 제목은 슬픈 도시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담고 있다. 한 시대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소리 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비극이 1949년에 멈추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끝나지 않을 비정성시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허우샤오셴 감독의 1989년작 비정성시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직후의 대만을 배경으로 2.28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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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45년, 대만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50년간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다.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일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임 씨 집안의 장남 문웅의 아들이 태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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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기쁨도 잠시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의 부패와 독선은 사회를 혼란과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임 씨 일가는 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사업가인 장남 문웅은 갱단과의 갈등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돌아온 삼남 문량은 정치적 탄압과 고문으로 정신이 피폐해진다. 막내 문청은 사진사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식인 친구 오관영과 그의 여동생 관미와의 교류를 통해 시대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1947년, 국민당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인 2.28 사건이 발생하면서 문청이 속한 지식인 그룹은 반정부 활동에 연루되고 결국 문청마저 체포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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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은 대륙의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되었고 50년간의 일본의 식민지배가 이루어졌다. 1945년의 일본의 패망과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중국본토에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서 파견된 행정 장관이 대만을 통치한다. 부패하고 오만한 성정의 그는 대만인 차별과 수탈로 경제혼란과 물가폭등의 상황을 야기했다. 본토에서 건너온 폭력배, 밀수업자가 판을 치고 질서가 무너진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에서 국민당정부전매국의 요원이 담배밀매 상인을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반정부봉기가 확산됐다. 시위와 봉기가 대만전역으로 퍼지며 중국본토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시민들은 무력으로 잔혹하게 진압한 일이 바로, 2.28 사건이다. 그 후 백색테러시대의 서막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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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졌으며 시대에 의한 혼란과 불안이 개인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임 씨 일가 형제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해방 후에도 대만 사회에는 일본 문화의 잔재가 깊게 남아있었다는 것은 문웅을 비롯한 형제들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문청은 청각장애로 인해 외부의 '소리'로부터 단절되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지식인들의 새로운 사상을 가장 깊이 받아들인다. 그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근대사상,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영향을 받았고 글과 사진으로 소통하며 자유주의적 이상을 새로운 국가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부패와 탄압은 젊은 세대의 혁명적 열망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그가 품었던 이상은 새로운 지배 세력에 의해 가장 먼저 숙청당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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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치 상황이 아닌 실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방의 희망으로 시작하지만, 혼란, 2.28 사건, 백색 테러의 과정을 거치며 임 씨 가족은 해체와 붕괴의 길을 걷는다. 특히 문청과 관밍의 사랑은 시대의 비극 속에서 피어난 순수한 희망이자, 폭력 앞에서 스러지는 나약한 개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허우샤오셴 감독은 이 비극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며 거리를 둔 채 관찰자 시점을 유지한다. 관객은 폭력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기보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총성이나 침묵하는 문청의 표정을 통해 시대의 무자비함을 체감한다. 이처럼 시대의 폭력과 그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는 무기력함에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허무함과 애환이 가득 담겨있다. 심지어는 끝나지 않을, 이후에도 계속될 비극에 더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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