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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양의 택배상자

미니멀리스트 엄마와 맥시멀리스트 딸

by 아침엽서


어머니, 실학자세요?


모든 선택의 기준이 실용성과 가성비라, 미학적 관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게 B양의 유머는 제법 핵심을 관통한다.


B양이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복이 서랍 하나를 채울 즈음 테니스로 갈아탔다.


내가 20년 전에 쓰던 테니스 라켓 빌려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럴 줄 몰랐다. 이니셜 새긴 새하얀 라켓으로 시동을 걸더니 가방, 액세서리, 운동복이 슬슬 서랍을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테니스가 저리 도구발 세울 일인가?


그래도 운동한다고 땀에 절여 올 땐 보기 좋아서 운동하는 거니까, 운동하면 회사 스트레스도 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잖아 하고 응원했다.


병렬 책 읽기만 있는 건 아니다. 병렬적 취미활동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재봉틀을 하고 이젠 뜨개질도 한다. 책꽂이 한편에 물감과 팔레트, 붓들이 나란히 나란히 자태를 뽐내고, 재봉틀 도구들도 가끔 외출하고, 색색의 실들이 방 귀퉁이에 쌓인다. 키티인형, 냥이인형모자, 햄버거강아지(강아지모양의 햄버거인지 햄버거모영의 강아지인지?), 요즘은 귀리(고모할아버지네 강아지) 옷을 한 땀 한 땀 뜨고 있다. 실은 최고급 해리포터 론의 스웨터실이란다. 이건 뭐 완전 애지중지, 과자 먹은 손으로 만졌다가 깍~!!! 한 소리 또 들었다.


오늘도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좁은 방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져 간다. 답답한 건 나다. 취미활동용 택배상자만이 나의 눈총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계절마다 유행에 따른 새 옷가지도 오고, 1+1이라서 샀다거나, 할인을 많이 해서라는 각종 핑계로 나의 미니멀 취향은 안중에 없었다.


출가 아니고 독립한 딸에게 ‘웬만하면 너의 집으로 돌아가시라’하고 싶지만, 하숙생 주제에 ‘엄마 심심할까 봐 자기 집에 안 간다’는 핑계가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니 ‘회사가 가까워서’라는 정답을 알면서도 웃고 만다.


여백의 미와 비움의 미덕을 강요하는 엄마는 오늘도 사리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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