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비 내리는 바닷가에서 다시 시작하는 글. 장마철보다 비가 많이 내렸던 어느 가을날. 주말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산한 바닷가 풍경 앞에 서다. 바닷바람이 일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 부산항에 입항 대기 중인 배들이 바닷가에 둥둥 떠있었다.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눈앞에 마주한 풍경을 담아본다.
사진 안에 사람이 존재하는 풍경과 그렇지 않은 풍경은 자못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같은 풍경이어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진은 한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우산을 쓰고 한산한 해변가를 거닐던 사람들.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비슷한 속도로 천천히 조망해 보았다. 사람들 뒤로 해변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눈에 띈다. 눈길이 가는 대로 무심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변가의 모래사장 앞에 펼쳐진 바닷가. 바닷가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들. 바닷가에 떠있는 배들. 작은 높이의 전망대와 초록빛이 감도는 섬의 모퉁이. 비 오는 날의 바닷가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바닷가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스산한 풍경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산함이 감도는 텅 빈 해변 안에 서서 일렁이는 상념을 파도 속에 놓아주었다. 바람이 일자, 희미한 빗줄기가 눈앞에 번진다.
해변가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 먹구름을 향해 높다랗게 뻗은 고층 건물들을 바라본다. 높게 솟은 직각 기둥들을 보는 것 같다.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보다 보니, 몇 방울의 빗줄기가 눈가로 떨어진다. 시선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인공폭포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폭포의 물줄기들 사이로 희미한 빗줄기가 겹쳐진다. 수직의 이미지가 주위를 둘러싼다.
며칠 동안 이어지던 비. 지리한 비가 그치자, 마침내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창한 풍경 속에서 지나간 날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본다. 빗소리가 들리던 한산한 바닷가 풍경. 사진과 함께 글로 적어 내려가는 그날의 이야기. 과거의 기억은 추억이 되고, 글과 사진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이화.
2025년 10월 23일
한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