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주하는 삶의 길목에서 글을 쓰며 잠기는 짧은 사색.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들은 때론 몇 마디의 문장을 만들어주곤 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을 자주 사진으로 남기곤 한다. 사진을 찍을 당시엔 마땅히 쓸 곳이 없어 보여도 나중에 다시 보면 요긴하게 쓸 곳이 생기기 때문이다.
'계륵'같이 느껴졌던 사진 한 장도 나름의 쓰임새를 찾고, 때로는 괜찮은 글감이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 종종 사진에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사진이 가진 느낌을 조금씩 바꾸거나 색채를 없애고, 크기를 조정하는 등 사소한 편집을 한다. 그러한 작은 변화를 거친 뒤, 기존과 다른 인상을 풍기는 사진들이 있다.
어느 골목길에서 찍은 이름 모를 꽃과 군데군데 얼룩이 진 회색빛 담벼락.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이러한 풍경에 별다른 이끌림이 없었지만, 별생각 없이 습관처럼 사진으로 남겼다. 나중에 풍경 사진을 다시 보았을 때도 큰 감흥이 없었다. 실은 불만족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리저리 변형을 하다 나온 결과물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왜인지 뚜렷한 이유를 댈 수 없지만, 이 사진을 이번 글의 메인으로 삼고 싶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맨 날. 실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기에 애당초 길을 잃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무작정 깊은 숲 속을 걷고 또 걸었다. 한참 동안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숲. 흐린 날씨와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들 덕분에 대낮인데도 우중충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두려움이 들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몇 장을 남기며 말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길 중간에 밖으로 빠져나가는 오솔길을 발견하였다. 숲길을 빠져나오며 낮은 담장을 앞에 두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해가 지고, 여명이 사그라질 때 뜬 초승달. 손톱과도 같은 초승달이 희미한 빛을 내뿜는다. 제법 쌀쌀해진 저녁에 뜬 초승달은 가련한 인상을 준다. 빈 공간이 보이는 나무들 틈새에 낀 옅은 여명도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비가 내리고, 겨울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계절. 생각보다 금방 다음 계절이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삼화.
2025년 10월 30일
한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