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다가온 겨울. 12월을 목전에 둔 지금. 연말이 다가오면 그 해의 다짐들을 한데 모아 차례대로 펼쳐 놓는다. 연초에 세웠던 거창한 계획과 당찬 포부들은 대개 낙엽처럼 떨어지고, 이내 바람에 휘날리듯 사라진다. 그러한 것들을 꺼내 하나하나 곱씹어본다.
후회, 아쉬움, 부끄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러한 감정들이 뒤섞여 낸 떫은 생각들. 떨떠름한 기분을 한동안 음미하는 시간.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짧게 풀어본다.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면 과연 어떠한 것들을 다짐할 것인가. 새해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지난해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거창한 무엇인가를 다시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망각과 어리석어 보이는 다짐의 반복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빗방울 사이에 섞인 희미한 눈발이 눈앞을 가로지른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소양강처녀동상이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고름과 어울리는 날씨. 짧아진 해는 생각보다 빨리 땅 위로 어둠을 드리웠다. 검은 이불을 뒤집어쓴 주위의 풍경에는 고요함이 감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무언가 특별한 아이디어를 건지지 못한 채로 돌아온 여정. 도래한 기한 앞에서 급급하게 풀어내는 글. 예상보다 짧아진 글을 마무리 지을 즈음, 소양강에서의 기억이 뒤늦게 따라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분절된 상념들을 간신히 끼워 맞춰 날이 바뀌기 전 글을 올린다. 비록 거창한 다짐들은 대부분 지키지 못한 채 길 위에 떨어진 낙엽처럼 시들어버렸지만, 조악한 글쓰기는 나름의 궤도를 계속 돌게 만들고 싶다.
칠화.
2025년 11월 27일
한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