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와 수라갯벌과 해창갯벌에서의 두 밤 사흘 낮
군산시 하제마을로 가는 길에는 지나치지 못할 서점 마리서사가 있다. 내 탈핵 순례 책이 잘 비치돼 있나 가 본 그곳에서 숨이차는 내 책을 사고, 나는 우현옥 글, 최영진 사진의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이라는 미래 환경 그림책을 한 권 샀다. 7년 전 서울 강북의 어느 갤러리에서 새만금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던 최영진 작가와 사진을 만난 적이 있다. 처절하게 죽어가는 새만금의 커다란 새가 충격적이었다. 그가 찍었던 사진이 2017년의 10월에 출간된 그림책에 강렬하게 있었다.
그의 사진 옆에 글을 쓴 우현옥 작가의 말을 빌려본다.
‘예부터 사람들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쳐 만금(萬金)이라고 불렀습니다. ‘새만금’은 이곳 ‘만금’에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겨나는 땅’의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지요.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 퇴적물이 쌓이면서 특히 강 하구가 발달했는데,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혜의 습지입니다.’
그 습지가 인접한 하제마을로 갔다.
이번 살살 페스티발의 동선은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와 수라갯벌과 부안 해창갯벌까지 이어진다.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14:00 팽팽문화제
가을날이 청명하고 창창했다. 600년 생애 최고였을 지난여름의 혹서를 견딘 팽나무는 더욱 장대하고 우람했다.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1238-8 (산 205) , 하제마을을 지켜온 팽나무의 위용 아래 전국에서 온 200여 명이 모여있었다. 매달 세 번의 일요일이 지난 첫 번째 토요일 오후 세 시에 하는 팽팽문화제는 이날로 46회째였고, 이 행사에 50주년을 맞는 마당굿 운동 공연이 함께 했다. 이렇게 성대한 출발이 살살 페스티발의 시작이었다.
더덕(중서)과 부산 민예총 김기영의 사회로 오후 두 시 반부터 시작한 공연은 1부 하늘굿 및 하제 팽나무 당산 마당밟기와 2부 축하 판굿으로 이어졌다. 하늘굿 개천무(開天舞)와 답지저앙(踏地底仰) 원형 춤에 이어 정화수 의례가 있었다. 여성들이 나무 받침에 이름을 쓰고 그 위에 도자기 그릇을 놓고 그 안에 물을 부은 후 한지에 세 번 불을 붙여 날리는 의식이었다. 100일 동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그 의례는 옛날 부뚜막에 치성을 드리던 우리 어머니네 삶을 복원한 것이었다.
팽팽문화제를 만드신 문정현 신부님이 나오셨다. 오후 햇살에 반사된 은발과 수염이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문정현입니다. 여기만 오면 등골에 철사가 올라와요. 그래서 꼼짝을 못 해요. 풀어질 때까지. 여기만 오면 화가 나는데. 1997년부터 미군기지 싸움을 시작해서 SOFA라는 걸 알고 전국구 싸움을 했는데, 97년 이후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엄청나게 확장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600년 된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팽나무가…, (처음엔) 있는지 몰랐습니다. 왜냐면 동네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국방부가 (마을을) 수용하고 나서 새벽에 왔는데 팽나무가 호통을 치셨습니다.
‘너희 동네 놔두고 어딜 갔다 이제 와?’
그리고선 오늘 46회 팽팽문화제를 하는데……. 여기는 국방부 땅이 됐습니다. 미군기지 확장이 될 겁니다. 실제로 요구하고 있고요. 그런데 팽나무 할아버지가 지키고 계십니다.
수라갯벌에 관제탑 옮기고 미군기지 확장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그걸 국제공항이라고 거짓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야 할 거 없이 미국의 꼬붕들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여기 팽나무 할아버지께서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갈 순 없고요. 수라갯벌이 미군기지 활주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여기가 1845년에 김대건 신부님이 노를 저어서 상해에서부터 왔다 갔다 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얼마나 여길 보고 있겠습니까? 미군이 확장되면 어떻게 보겠습니까?
내가 제주도(강정마을)에서 만 13년을 살았어요. 여기 군산에 머물러서 팽나무가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여러분이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마운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팽팽문화제의 정의를 그 이상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축제에는 춤과 노래와 풍물이 빠질 수 없다. 새천년 학춤(동래학춤 군무)과 겨레의 노래와 남자현 초망자 굿이 이어졌다. 초망자 굿은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어머니로 세 차례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조선독립을 호소한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 열사 현신 굿이었다.
판굿과 창작 탈춤 신촌 오광대의 용산 풍자 마당과 민요 모음에 이어 팔도강산 개벽 풍류정이 전태일, 김경숙. 조성만 열사와 백남기 농민과 박형규 목사님으로 현신하여 탈춤판을 벌였다.
장장 세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저녁 여섯 시쯤, 어느덧 절반이 가고 100여 명이 남았다. 들깨 수제비와 채식 카레와 이국적인 부대찌개와 각종 반찬이 풍성한 저녁밥이 제공되었다. 팽나무 앞에서 한상차림을 먹는데 어둠이 서리서리 내려왔다.
19:30 팽나무 앞
기온은 급강하했으며 하늘엔 별이 총총 떴다. 그 하늘 아래에서 영화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 2 다시 바람이 분다’를 상영했다. 풀밭에 간이 의자를 놓고 단편 영화 여러 편을 보았다. 어둠 속 스크린에 펼쳐진 교권을 지키기 위한 교사의 이야기, 탈북자와 여성 인권에 관한 이야기, 이태원 참사 이야기 등 이 시대 구석구석을 조명하는 감독들의 시선이 고마웠다.
영화 상영 후 삼삼오오 모여 캠프파이어를 했다. 고기와 떡과 마시멜로가 구워지는 모닥불 앞에서 조곤조곤 담소가 오고 갔다. 평화박물관을 공사한 분이 딸과 함께 마주 앉아 떡과 치즈를 구워주셨다. 그분처럼 오랜 시간 평화바람과 함께한 이들이 많았다. 노래하는 이, 웹 포스터 만드는 이, 요리하는 이 등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어디서 무얼 하다가 이제 왔을까. 밤 아홉 시, 열 시, 열한 시. 그렇게 살살 페스티발의 하루가 살살 저물었다.
동국사 옆 숙소에 숨이차를 내려주고 나서야 카메라 충전기를 챙겨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집으로 향했다.
새벽 세 시에 한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군산으로 향했다.
10월 27일 일요일
06:30 하제마을 팽나무 앞
새벽 안개 사이로 이슬 맞은 텐트 몇 동과 조반으로 제공될 냉동 연잎밥이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풀 속에서 새들이 지지배배 도란도란한 아침이었다. 참가자 동반 강아지도 여유 있게 냄새 맡고 다니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참가자들은 쓰레기를 함께 치우고 대나무를 베어 도보순례 때 들 깃대를 만들었다.
07:30 따뜻한 연잎밥과 콩나물국과 사과로 아침밥을 먹었다. 새들도 그 시각 먹이를 찾아가는지 팽나무 너머에서 나온 새떼가 V자로 줄지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여덟 시가 훨씬 넘어 가마우지를 탐조하러 나섰다. 여러 대의 차가 줄을 이어 옥녀봉 쪽으로 이동했다. 마을 입구에서 주민들에게 지장 있을까 봐 최소한의 차에 여러 명이 옮겨 타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평화에는 배려가 따른다. 탄약고를 길게 지나 차에서 내려 소리 죽여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08:45 옥녀봉
채석장 바위에는 까만 가마우지가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채석장 위 나무들은 가마우지 배설물로 인해 하얗게 죽어가는 백화현상으로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고, 암벽 아래로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그 물에 물고기가 살고 있다면 그곳은 주변 탄약고와 채석장으로 인해 마을 주민이 좀처럼 접근하지도 않으니 가마우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쾌적한 보금자리였다.
갯벌이나 바닷가에서도 살지만, 민물에서도 사는 민물가마우지는 보기 드문 겨울 철새였으나 기후위기로 인해 2000년 초부터 텃새 화 되었다. 그런데 민물가마우지의 개체 수가 늘면서 분변으로 인한 백화현상과 수질 오염, 어류 포획 등의 피해 상이 생겼다. 이에 환경부는 이들을 2023년 유해조수로 지정했으며, 올해 3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조(유해야생동물) 개정으로 포획할 수 있게 했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인간인데, 그 인간이 기후위기 때문에 텃새가 되어 생활하는 새들을 포획하다니 누가 누구의 죄를 물어야 하는가.
잠시 후 새들은 일제히 날아갔다. 한 편은 새만금 쪽으로 다른 한 편은 금강 쪽으로. 아직 갯벌에 먹을 게 있다는 증거다. 이 설명 대부분을 딸기로부터 들었다.
나는 채석장 쪽으로 다가갔다. 가마우지는 벌써 날아가 버렸지만, 흔적이라도 가까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쌓아놓은 모래흙 위에 가마우지 머리와 날개 한쪽이 있었다. 가마우지는 누군가와 결투했을 테고 몸통과 다리는 사라지고 머리만 남았다. 곁에 있던 여선생님이 남학생에게 묻어주자고 했다. 주검도 그것을 매장하는 손길도 정갈해 보였다.
09:45 새만금개발청 앞
“여기 새만금개발청 앞에서부터 있는 길은 원래 바다였습니다.”
딸기의 설명을 듣고 후에 지도를 보니 새만금개발청에서 서쪽으로 5㎞ 정도 끝에는 비응도가 섬이 아닌 육지가 되어있었다. 거기부터 33.9km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된다. 그 사이 갯벌 메운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는 아직도 산업시설용지 희망기업 모집 공고를 하고 있다. 8천 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갯벌을 메워 몇십 년 기계를 돌린다니. 인간의 초 근시안적 시야는 삶도 문명도 모두 산업이라는 미명 하에 팔아치우고 있었다.
차를 타고 남북로로 이동했다. 미군기지와 군산공항과 남북로 사이에는 갯벌이 있다. 영화로 유명해진 ‘수라’. 그 수라갯벌로 내려가 보았다. 새만금 방조제에 이어 남북로로 칭하는 4번 국도로 두 번이나 바다가 막힌 수라갯벌은 놀랍게도 살아있었다. 물기만 있는 차진 갯벌엔 퉁퉁마디와 해홍나물과 억새 등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저 멀리 얕은 물에는 황새와 다른 종류의 새들이 있었다. 하루 두 번 해수 유통으로 수라갯벌은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겠다고 한다.
(2024년 10월 22일 전북도청 앞에서 낭독한 새만금 신공항 전북도 공개토론회 촉구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새만금 신공항은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운영 중인 군산공항도 매년 3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신공항이 건설되면 적자액은 훨씬 증가할 것이다.
반면 전 세계 최초로 탄소저장량을 조사 발표한 서울대학교 김종성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수라갯벌을 보존했을 때 경제적 가치는 연간 최소 87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라갯벌을 보존하는 것과 파괴하고 공항 건설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경제적 이득이 있는가. 전라북도지사를 비롯한 정치권은 2023년 국제적 망신이 된 잼버리 개최를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를 요구했고 이에 하루 만에 의결되었다. 졸속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경제성만이 아니라 새만금 신공항 건설에는 다른 배경이 있다. 새로 건설하겠다는 공항 활주로 길이는 군산공항보다도 짧고, C급 항공기만 취항 가능하여 동남아 등 정도밖에 이동할 수밖에 없으니 설계상으로도 국제공항이 될 수 없는 규모다. 게다가 새만금 신공항은 대중국 전초기지인 군산미군기지 바로 옆에 위치하기에 중국 노선은 취항할 수 없다. 미군이 불허했기 때문이다. 관제권은 미군의 요청에 의해 통합 관제되고 미군은 SOFA 협정에 따라 새만금 신공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새만금 신공항은 독립 민간 국제공항이 될 수 없다.
축구장 400개가 넘는 340만 제곱미터의 면적의 탄소흡수원인 수라갯벌, 멸종위기 1급 조류 저어새, 황새, 흰꼬리수리 등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는 수라갯벌을 파괴하고 기차 대비 1인 단위 거리 기준 탄소 배출량 20배인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전라북도. 이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기후위기 대응 탄소 중립 실천에 역행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갯벌에서 올라오니 맞은편 방조제 쪽으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망원경을 대어놓고 있었다. 뒷다리장다리물떼새를 포착했다고 했다. 뷰파인더를 통해 눈앞으로 다가온 장다리물떼새는 부리가 살짝 위로 들린 듯 까맣고 길었다. 긴 다리에 긴 부리로 얕은 물에서 뭔가를 나붓나붓 잡아먹고 있었다. 선이 고혹적인 새의 매력에 빠져드는 찰나였다. 찾아보니 장다리물떼새는 4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 관찰되는 여름 철새인데, 10월 말까지 새만금에 있다니 기후 온난화 현장을 보는 듯했다.
11:00 새만금 남북로 걷기
수라갯벌에서 국도 4호선 남북로 위로 올라와 잠시 간식을 먹고 쉰 후 그곳에서부터 남쪽으로 걸었다. 그 길에는 자전거도로가 있는데 뒤덮인 덩굴이 발에 걸려 걷기도 힘들었다.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에 관리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이에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와 전북경찰청 교통정보센터에서 통행량 대비 건설비용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가.
12시가 넘어 다리가 아플 때쯤 다리 밑에 앉았다. 점심 식사는 김밥이었다. 모든 식사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었다. 김밥 한 줄도 허투루 주문하지 않는 주최 측의 세심함을 느끼며 땅바닥에 앉아서 고급 김밥을 먹었다. 문정현 신부님과 더덕은 앉지도 못한 채 서서 김밥을 드셨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길에 신호 없는 신호등과 역주행 금지, 좌회전 금지 등 온갖 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금지할 것은 바다 생명을 죽이는 무분별한 개발뿐이었다.
오랜만에 걸어서인지 4.5km 남짓이 꽤 길었다. 어느덧 갯벌엔 버드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만경강 타고 흘러온 씨앗이 자라서 버드나무가 된 거예요.”
앞에 가던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일행에게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씨앗의 힘은 얼마나 끈기 있는가. 갯벌의 품은 얼마나 포근한가. 갯벌에 흙이 쌓여 습지가 되었다. 바다에서 커다란 나무가 자란다. 방조제와 방수제 사이에 하얀 바닥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와 풀과 새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점점 땅이 되어가고 있는 바다. 그래도 살아남아 고맙고 슬픈 바다. 갇힌 바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낼수록 걷는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오후 한 시 반쯤 만경대교를 바라보며 도보순례는 끝났다.
김제에서 다시 군산으로 운전을 해 숨이차를 내려주었다.
정화수 의례 때도 너도나도 김밥을 먹을 때도 늘 뒤에서 다른 사람 다 하기를 기다리던 숨이차,
노란 캐리어를 끌고 출근을 위해 돌아가는 숨이차의 뒷모습에서 따스하고 은근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16:00 해창갯벌 살살 페스티발
빗방울이 잠시 흩뿌렸다. 날씨를 예견한 듯 참가자 준비로 비건 떡볶이와 어묵이 요리되었다. 떡볶이 좋아하기로 연령대를 가릴 수 있으랴만 이번 참가자 중에는 청소년이 많았다. 금산간디학교와 서울 성미산학교 학생들이었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캄캄밴드의 관악 연주와 전북 주민과 아이들의 수라의 꿈 노래와 학생들 노래와 하와이안 훌라춤 등에 이어 제주 조약돌이 팟핑크 돌핀스 옷을 입고 기타치며 노래했다. 오이가 단체 문자로 알려준 노래였다.
<방조제 걷어내요>
전 세계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면 방조제를 걷어내요
갯벌의 생명 평화를 살리기 위해 바닷물을 채워야죠
생명의 물꼬를 틔우고 그레질을 하며 살아가자
반갑구나 친구들 다시 만나 방조제를 걷어내자
도요새 짱뚱어 백합 농발게도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요
동진강 만경강 만나 하나 되는 아름다운 갯벌 살려내요
라라라~
모두 흥에 겨워 리듬을 타고 있을 때 뒤에서 왼쪽 앞을 보았다. 문정현 신부님이 두 발을 까딱까딱 위아래로 흔들고 계셨다. 동심과 신부님이 참 잘 어울렸다.
조약돌이 다음 곡 소개를 하며 울컥했다. 평택 투쟁에서 하신 문정현 신부님 연설을 토대로 조약돌이 원곡을 작곡한 그 노래였다.
<평화가 무엇이냐>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 보고 손을 잡자
새 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이 노래를 듣고는 20년 전 역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조약돌이 올린 영상을 발견했다.
2004년 5월 29일 평택에서 열린 529 평택 반전평화문화축제‘총을 내려라'에서 청년 같은 문정현 신부님의 피 끓는 연설이었다.
https://youtu.be/-f0Q587cQJg?feature=shared
마침내 신부님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마이크로 다가오셨다. 노래는 독창도 이중창도 아닌 합창이 되었다. 모두 춤을 추며 평화를 노래했다. 노래는 함성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넬켄라인 댄스‘서식지를 위한 춤’을 추며 장승 사이를 돌고 돌았다. 들판에 작은 씨앗이 떨어져 키 큰 들판에서 햇빛 받고 자라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꽁꽁 어는 사계절의 춤. 기후위기로 사계절이 두 계절로 바뀌어 가고 있는 21세기의 북반구 한반도 서해안에서 느린 음악에 맞춘 생명 기원의 춤이 땅으로 변한 갯벌 위에서 일몰과 함께 펼쳐지며 둘째 날 살살 페스티발을 마쳤다.
주최측의 배려로 부안 등용성당에서 따뜻하게 씻고 잘 수 있었다.
08:30 해창갯벌
7월 22일부터 매주 월요일 미사 드리는 해창갯벌에서 문정현 신부님이 새 장승 앞에 계셨다. 이순신 장군 동전이 미간에 박힌 동상이었다. 그렇다면 모인 우리는 열두 척의 배가 되어야만 했다.
09:30 살아있는 해창갯벌
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큰길에서 벗어나 새만금환경생태단지 지나 좁은 길을 달렸다. 멀쩡한 갯벌을 메워 건물 세워 놓고 생태단지라니 바다를 흙으로 메꾸는 데 몇 개의 산을 파괴했을까? 갯벌을 메웠지만, 농지로 쓸 수 없어 녹지를 만들려고 소먹이 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심어놓았다는 곳을 지난 듯했다. 멈춰선 그 길옆에 억새와 풀이 어찌나 수북하고 가득한지 그 길로 내려가는 입구부터 음악 없는 뮤직비디오를 찍는 듯했다.
걷고 또 걷고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웅덩이가 나오고 마른 흙이 젖은 뻘로 바뀌었다. 그러자 탄성이 터졌다.
붉은 갯벌이 펼쳐졌다. 염생식물인 퉁퉁마디와 해홍나물. 그 너머에 새들이 가득했다. 그곳은 발목 차는 바다였다. 장화를 신은 사람들과 벌써 맨발인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갯벌에 사람이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생명이 해를 입을 거로 생각해서 처음부터 신 벗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갯벌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까지 들어가서 신발이 진흙 범벅이 된 후에야 뒤늦게 마음을 먹었다. 8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와 뒤꿈치가 너덜너덜 찢어진 등산화를 벗고 양말도 벗어 그 안에 넣었다. 남루함을 벗고 말쑥해진 하얀 발이 시커먼 갯벌을 디뎠다. 갯벌과 만나고 싶었다. 영화 <아바타>에서 존재가 존재를 만날 때 하던 대사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 처럼.
바닷물은 따뜻하지 않았고 내 몸은 시름시름하던 차였지만 갯벌에 맨살의 나를 맡겼다. 갯벌의 생명력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그건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 온 갯벌을 살리자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I touch you. I feel you.
나는 당신을 만집니다. 당신을 느낍니다.
짙은 고동색 뻘은 밀도가 높아 발이 빠지지 않았고 바닷물은 찰박찰박 발등에 걸렸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얕은 바닷물 아래 새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새 발자국 옆에 내 발을 놓아보았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공존해야 하는 존재였다. 다른 대륙에서 멀고 긴 하늘을 날아온 새가 또 다른 대륙까지 날아가기 위해 잠시 쉬어 가던 곳, 이곳에서 먹이를 먹지 못하면 종착지까지 날아갈 수 없는 철새의 절대 생명 터 새만금 갯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갯벌, 땅과 바다 사이의 갯벌,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갯벌. 우리는 피부와 호흡과 원초적인 감각으로 통하고 있었다.
갯벌은 애초에 살아있었다. 몰지각한 인간이 폭력으로 개입하기 전에는. 용지 확보라는 이유로 토착 어민 내쫓고 토목건설회사 배 불리는 개발로 살아있는 갯벌을 죽인 인간이 아니었다면. 목을 졸라 질식사 직전까지 가게 해놓고 잠깐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가 또 쥐려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자멸을 예견하는 비극과 구사일생의 두 갈래 길 앞에서 선택을 망설이는 인간의 무지와 각성을 관망하듯 태초의 땅처럼 축축한 갯벌 너머 물수리 한 마리가 장대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
해창갯벌의 생명을 온몸으로 느낀 모두는 미사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녀오는 동안 신부님과 친구들이 완성한 장승을 세웠다. ‘살아있는 동안’. 올해 평화바람 달력 제목이었다.
‘살아있어야 할 것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 살아 움직일 힘이 있다면,
…자 살아봅시다, 살려봅시다.’
천막 아래 앉은 참가자들은 돌아가면서 살살 페스티발 소감을 말했다. 그중 성미산 학생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원래는 여기가 투쟁했던 많은 분이 있고 삶터를 뺏기거나 죽어간 많은 존재가 있는 기억이 더 강했는데, 이번에 돌아보면서 그런 것도 물론 있지만, 생명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그간은 끝났거나 과거의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은 여기 어떠한 흔적이 남아있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 있고, 그 현장을 오래 지켜본 분들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지켜주시고 활동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즈음 오두둑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십 년 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이 새만금은 아마 우리가 죽어도 존재하고 있겠고, 누군가 살아있는 동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동기는 이응 때문에 결단을 내렸어요. 함께 20년 전에 새만금 영상을 보다가 살살 페스티발이 있었고, ‘다시 재현하고 싶다. 그때 그 열정적인 사람들 다시 소환하고 싶다. 그때는 목 터지게 얘기했는데 지금 다 어디가 있을까?’ 그런 묘한 감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거 하면 얼마나 올까, 초라하지 않게 성미산이 올래? 그래서 저는 내년도 걱정 안 해요. 금산 간디학교하고 성미산학교하고 살살 페스티발 맡으세요. 이제 손님으로 오시지 마시고, 여러분이 이곳을 지키는 당사자로서 내년 2025년 살살 페스티발 기획해 주실 거죠? 해 주라. 고맙습니다.”
“해 주라~ 해 주라~”
바람과 간청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졌다. 그랬다. 살살 페스티발은 2007년에 하고 이번 2024년에 했으니 17년 만에 복원한 축제였다. 학생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리려고 했던 새만금 갯벌. 8천 년의 세월을 품은 갯벌, 그 갯벌을 살리기 위해서, 첫날 200명 넘는 사람들 과 함께 마당굿 운동 50년과 46회 팽팽문화제로 시작한 살살 페스티발은 둘째 날 수라갯벌을 지나 4㎞ 넘게 걸어 마른 해창갯벌에서 축제를 하고 셋째 날 원형에 가까운 해창갯벌에 발을 담그며 생명을 마셨다.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총괄하며 매끼 최상의 식사를 준비하고 배달해준 오두둑과 모든 행사를 진행하고 생태교육을 해 준 딸기와 오이와 오동필 단장, 행사장을 설치하고 관리해 준 더덕과 현철 등 평화바람과 친구들 덕분에 대규모 축제가 순서마다 긴밀하고 알차게 이루어졌다. 참가자들 가슴에 나무와 새와 풀과 갯벌 한 줌씩 쥐어주며.
2박 3일간 그들이 어떻게 호흡과 손발을 맞추는지 가까이서 보았다. 다섯 명이 오십 명처럼 일하는 평화바람을 보며 금산간디학교와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이들을 따른다면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넘게 공사하고 있는 새만금. 물을 막아도 물길을 조금만 터주어도 살아남는 갯벌의 생물처럼 생명을 향한 우리의 생기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살살 페스티발은 오후 세 시 제14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 미사로 이어졌다. 모처럼 200명이 넘었다. 살살 페스티발 참가자 중 많은 이들이 갔지만, 어리고 젊은 학생들이 미사 중에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신부님 말씀처럼 빼앗긴 갯벌에도 희망은 온다. 갯벌이 살아야 인간도 산다. 살리는 일이 사는 일이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오후 2시에 국가지정자연유산(천연기념물)으로 등재되었다. 지키니까 살린다.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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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길목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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