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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Nov 14. 2024

특강

눈이 옵니다 또는 눈이 웁니다


친구가 준 새 구두를 신었다.

학기 중 구두를 신는 날은 특강일.

지난달 작가 특강 때는 초록 구두를, 오늘은 빨간 체크 구두를.


준비 사항은 구두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 이전부터 스카이라운지 식당을 예약해 놓고, 풀코스 메뉴를 물어서 정해놓았다.

학생들에게는 강사님 책을 읽고 질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강의 며칠 전에 질문지를 취합해서 보내드렸다. 먼 길 오시는 분에 대한 성의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또 미리 알고 있어야 그만큼 많이 얻기 때문이다.

평생 한 번 혹은 살면서 몇 번 없을 기회를 잘 잡으라는 뜻이다.


새벽에 운전해 오실 강사님을 위해 집에 있는 음식을 싹 쓸어갖고 나갔다.

미리 대전역에서 사놓은 성심당 빵도 챙겼다.

내 책은 덤이었다.

주차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 놓자 시간 맞춰 강사님이 오셨다.

배고프실까 봐 준비한 것들을 늘어놓았다.

요거트, 통밀빵, 무화과잼...

다행히 잘 드셨다.

짧은 시간에 선물을 교환했다.

작가님 사진집과 예쁜 차(tea)와 내 책들과 사진집.


서둘러 들어간 강의실에는 조신하게 앉아있는 학생들.

조명을 끄고 강의를 듣는다.

학기 초부터 학생들에게 누누이 말했다.

한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님을 섭외 중이라고,

그리고 얼마 후 섭외했다고.

세계적인 작가님이 오시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라고.


강의는 사진 발명부터 코닥 광고를 거쳐

왜 사진 찍기는 쉬워졌는데 사진 찍기가 어려울까,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코드 없는 메시지

모호한 매체

사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맥락


대추리, 라쇼몽

목격자는 크든 작든 진술의 책임이 있고, 그 진술에는 결함이 있다.

진술이 진실은 아니다.

현장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엮어야 한다.

정치 사회와 순수예술의 관계


!느낌표가 감동이라면

?물음표는 의문


의문이 남기를, 불편함을 바라는 사진 작업


과거 작업 방식과 현재의 작업 동향


그리고 질문과 답변


마지막 서명

 '눈이 옵니다 또는 눈이 웁니다'


그의 책 제목 '말하는 눈'의 '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눈.

중의법과 유머

그의 사진에 글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였다.

물론 사진만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쓰여있는 글을 읽고 나면 몰랐던 상황이 보이고 사진이 요구하는 눈을 갖게 된다.


특강 후

13층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식사를 대접했다.

자주 환대에 감사하셨다.

그렇게 느끼셨다니 기뻤다.  

살아있는 동안,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강사료와 식사비와 선물비로 한 과목 월급의 절반 이상을 지출했다. (그래도 감히 모시기 미안한 액수의 강사료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학생들이 평생 모르고 살거나 알아도 못 만날 분들을 모셔와 그들의 인생에 큰 만남을 경험하게 해주고, 내가 떠돌 때 날 먹여주고 돌봐준 이들처럼 나도 내 수입을 나눠 예술가들과 공유하는 삶.

이런 자발적 기쁨의 수고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모른다.

이틀 전 지난달 특강 강사님이 서울로 학생들을 초대해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인생은 예상보다 다이나믹하니까. 내가 숨이차로부터 '말하는 눈'을 선물 받고 저자를 초대한 것처럼.

나는 학생들이 단지 문화충격을 넘어 그 놀라움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두 달 넘게 준비하고 기다리던 시간을 모두 마쳤다.


"이 멀고 작은 학교에 새벽부터 기차로 운전으로 오신 특강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우리 학생들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 떨어졌을 겁니다. 그 불씨가 저 들에 번지기를 오래 함께 기다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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