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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Nov 16. 2024

네 권 남은 책

내가 보낸 정원 일기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 네 권이 남았다.

선인세 잔금을 몽땅 책으로 받았다.

그중 사분의 일이 이다에게 갔다.


정읍에서 시리게 지내던 시절에 찾아온 이다는 책 한 권도 못 내고 하염없이 막막하던 내게 첫 책을 내면 백 권을 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십 년 넘게 쌓아온 든든한 우정의 실제. 그 백 권의 약속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기운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는 작년에 나온 첫 책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는 대중성 없이 어렵기에 스무 권 샀다고 했다.

이번에는 서른 권 값의 스무 권을 사주었다.


책과이음에서 책 홍보문이 나왔을 때 지인들에게 문자로 알렸다.

휴대전화기에 백여 명 연락처가 있는 내 성격에 아무한테나 문자를 보냈을 리는 만무하다.

그중 몇이 바로 책을 주문했다는 답신을 주었다.

나를 사랑하거나 특별히 아끼는 이들이었다.

사서 보겠다고 한 사람은 극소수, 나머지는 잘 받겠다고 답을 했다.


사진 액자 분리하러 갔다가 오선생님과 관장님, 선 의상실과 에니어그램 선생님께는 직접 드렸다.

추천사 써준 분과 그 편에 그의 학생인 포항에서 숙소를 구해준 이에게도 드렸다.

글씨가 잘 보이지도 않으실 집 주인께도 드렸다.

요즘 제일 자주 만나는 평화바람 식구들에게도 직접 선물했다.

특강 와주신 사진작가님의 옆지기에게도 드렸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등기우편으로 마흔 한 권을 발송했다.

대부분 책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였다. 우편료만 20여만 원이 들었다. 하지만 고마움을 책으로 갚고 싶었다.


그런데 주소를 확인하려는 문자에 답이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3년 전 곡성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 노란 자두 두 알을 주고 연락처를 알려주며 집으로 오라던 이였다. 나중에 내게 밥을 사주고, 내 탈핵 벗들이 왔을 때도 함께 웃고 이야기했던 이였다.

목요일 오후에도 금요일 아침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랫집 사는 이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휴대전화기에 바로 연락처를 입력하지 않았기에 수첩에 그들이 적어준 연락처가 있었다. 아랫집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연결이 되었다. 나를 기억했다. 그 사람에게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윗집 그이가 지난 4월에 쓰러져 뇌출혈로 지금까지 입원과 재활치료 중이라는.


지난한 3년의 세월이 책으로 나오고 그 책을 선물하는 과정에서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는 소식을 듣는다.

그다지도 씩씩하게 맨 손으로 씨앗 농사를 짓던 그이가 지금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그 소식을 듣고 지난밤에 가슴이 몹시 아렸다.


하지만 오늘은 햇빛이 따스하고 오랜만에 콩이랑 동네 산책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책장 한 칸을 가득 채웠던 예쁘디예쁜 내 책이 홀랑 사라져 허전하지만, 그 책을 받은 사람들이 읽고 나와의 추억을 더듬을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어차피 비움 실천. 가진 걸 나눠주고 살자고 작정한 인생 아니던가.

다만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 책 참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책을 가장 잘 만드는 1인출판사 책과이음이 번성했으면 좋겠다.


그 많던 책이 다 어디로 가버리고 이제 겨우 네 권 남았다.

이 책은 앞으로 만날 사람들 중 내 글을 잘 읽어줄 만한 사람에게 선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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