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든 견고한 진.
도민이가 오면 나는 늘 긴장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종신형을 내린 그는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힌 채
일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온다.
“아버지가 죽어도
장례식에는 안 갈 거예요.”
도민이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본 적이 없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도민이는
학업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야했고
친구들과는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아버지는 친척들과 도민이를 비교하며
아버지 본인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학력을 도민이에게 요구하였다.
도민이의 미래는
아버지에 의해
결정되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고
도민이는 집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도민이는 지금 심한 무기력에 빠져있다.
아버지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자식을 사용했던 댓가로
자식은 지금
마음과 몸
그리고 꿈도
잃어버렸다.
아버지로부터 항상 꾸중과 비난만을 받아왔던 도민.
열등감이 심한 도민은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늘 경계한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조정당했으니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그에겐 당연하다.
부모가 내게 했던 비난과 지적의 말들은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다.
그 말들을
정말 믿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복을 입는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은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타인이 나에게 호감으로 보여준 행동도
자신을 공격한다고 해석하며
타인의 호의를 거절한다.
거절받은 타인은 나를 떠나고
나를 싫어할거라는 타인에 대한 나의 오해는
진실이 되어
나의 생각은 점점 더 견고해진다.
나는, 내가 만든 견고한 진 속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고여가고 섞어간다.
“아버지가 보시기에 제가 불쌍하겠죠.
남들은 알바에 자격증에 다 하고 있는데
저만 병신처럼 이러고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병신이 맞거든요.
아버지 말처럼 병신이라서 못하는 거 맞거든요.
어쩌겠어요. 전 평생 이렇게 살 거예요. 선생님.”
수학을 좋아하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 도민이.
예의 바르고 절제할 줄 알며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하는 정의로운 아이 도민이.
그런 도민이가 스스로를 병신이라 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전 그래요 선생님.”
“그렇지 않아.”
“선생님은 상담사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잖아요.”
상담을 하며 내 힘으로는
내담자가 만든 그 견고한 진이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담자는
자신의 생각을 놓지 못하며
그 생각을 바로 자신이라 여긴다.
내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면
변화되기 힘들다.
또한
생각을 만드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삶을 바꿀 수 없다.
나에 대한 믿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나에 대한 진실을 바로 아는 것이다.
내 무의식에 박혀 있는
거짓된 말들을
토해내고 빼내며 삭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만든
견고한 진을 부셔가는 것이다.
당신은 소중하다, 귀하다, 아름답다
존재 자체만으로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다.
부디 존재와 생각을 바꿔 생각하지 말기를.
내가 아무리 못난 생각을 한다고 해도
내 존재는 변화되지 않는다.
내 존재는
그 어떤 생각과 현실과 환경에 변화되지 않으며
그 어떤 생각과 현실과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내 존재는 항상 귀하고 늘 소중하며 매순간 아름답다.
당신이 만든 견고한 진을
날마다 조금씩
부셔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