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말들]- 은유
슬픈 영화를 보지 않는다. 무서운 영화도 보지 않는다. 감정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들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다. 삶은 다각도의 감정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데, 아직까지 마음 편식이 심한 어른으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작가의 가명처럼 글은 은유가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주지 못했던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저자의 드러내기 글은 치유되어야 할 상처를 보여준다.
‘말이 아니라 문장형태로 자기 생각과 아픔을 표현해 볼 기회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저자의 글쓰기 강좌를 통해 생각과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치료가 되어감을 느꼈을 것이다.
‘단언 컨데 아이들은 미숙한 게 아니라 예민할 뿐이고, 어른들의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일 뿐이다.’ 인권 강의에서 한 청소년의 담담한 한 마디에 저자는 생각의 폭을 키운다. ‘청소년을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훈육의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시선’은 전형적인 기성세대 시선이 날로 드러난다. 조용하게 반성을 하게 된다.
저자의 글들은 오가는 생활 속에 만나는 일상의 이야기와 많은 책 속에서 삶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이 담긴 글들을 소개한다. 겪은 일, 들은말, 읽은 말을 역은 에세이 모음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내게 온 이야기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들린다’라는 깨달음을 보여 준다. ‘우리에게 삶을 담아낼 어휘는 항상 모자라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다는 것.’
저자가 던져 주는 서두말의 글들은 공감을 일으키는 말 들로 속이 꽉 찬 만두 같다.
‘한 사람을 사연과 이야기의 존재로 바라보면 존경스럽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저자의 생각과 행동을 잡아 준다고 이야기하는데, 또한 저자의 글이 내게도 그런 영향을 준다.
나를 천천히 바라보는 편에서는 어정쩡함과 불확실한 삶이 글쓰기의 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하고,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질문을 하는 일임을 알려 준다.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에서 암묵적으로 깔린 사회적 편견과 권위 의식을 보여 준다. 내가 낳은 사회적 타자 딸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 또한 딸로서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의무를 다하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 질문들이 글이 되고, 답을 생각하는 과정 중에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자신과 친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 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 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진다.’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리는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준다. 저자처럼...
‘당신의 삶에 밑줄을 긋다가’라는 편도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글들이 많다. ‘누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상은 비슷할지 모르나 사랑이 있고 없음으로 훗날 다른 얼굴, 다른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보여준다.’ 책 속의 글들이 생기를 준다.
60대까지 공부를 했던 저자의 글쓰기 회원 이재순 선생님의 이야기도 인상 깊다. 늦은 나이까지 하는 공부는 못다 이룬 꿈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그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또한 공부란 끝이 없이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거라 말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저자의 생각에서 지나온 내 과거의 실수를 발견한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어머니의 은혜가 아니라 ‘평생 밥 당번’으로 사셨던 그분의 고통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그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나쁜 어른으로 오래 늙는다.’ 착한 어른으로 늙고 싶다.
우리는 살수록 빚쟁이가 된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다.
저자가 읽었던 책 속에서 만나는 좋은 글귀들은 마음을 바쁘게 만든다. 책을 통해 만나야 할 사람이 넘쳐 난다. 마음 바쁜 일상의 고리들이 촘촘한 삶에서 책들을 꽂아 넣는 시간이 더 필요함을 느낀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부끄러운 것이다.’
‘더는 젊지 않은 자신과 헤어지는 처연함을 너무 몰랐다.’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장해 두고, 쓸쓸할 대 꺼내 기운을 차리지. 연금보다 더 좋지.’
낯선 세계와 마주 했을 때 느꼈던 저자의 깨달음도 인상 깊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자기 삶의 문제일지도 몰랐던 문제가 드러나는 경험은 언제나 신비롭다.’
평범함이 행복이고, 평범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 있으면 행복이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하다는 저자의 깨달음이다.
‘잘 산다는 건 내 일상을 오래 묵묵히 지켜본 사람을 갖는 거구나!’
‘주위를 세심하게 돌아보면’의 편에서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힘겨운 싸움을 이야기한다. 우리 생활 터전이, 문명의 편리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저자는 이야기한다.
‘노 키즈 존’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도 공감이 간다. ‘우리도 한때 떠 먹여 주는 밥을 먹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혐오의 언어가 사라지고, 약한 존재를 품는 인정의 언어가 넘치는 사회’를 꿈꾼다. 저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