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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재밌어지는 4단계 과정

by 책봄

한가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혹은 아니오라고 답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세뇌당한 착각일지 모릅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성공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책과 담을 쌓고 지낸지 오래되었지만 생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가끔 우연히 책을 마주할 때마다 빚진 사람마냥 죄책감이 들어요.


'책 좀 읽어야 하는데......'


큰 마음먹고 서점에 들어 명사들이 추천하는 책을 골라 듭니다. 그러나 몇 줄 읽고 이내 잠이 듭니다. 가벼운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는 좀 다를까 싶어 읽어봅니다. 읽을 때는 분명히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돌아서서 이내 잊어버립니다. 어느 새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영화평론가이자 애독가로 알려진 이동진은 본인의 저서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에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로 '재미'를 꼽았습니다. 독서교육을 강조하는 최승필 독서전문가 역시 독서는 문화이며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흥미'라고 강조했지요. OTT, 유튜브, SNS 보다 활자를 읽는 것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독서는 원래 어려운 활동입니다. 시각적으로 들어 온 감각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우리 뇌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앞뒤 문맥을 연결해 문장을 이해합니다. 이 복잡한 과정을 순식간에 해결해야만 온전한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마트폰은 즉각적인 만족을 줍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재미를 제공하지요. 우리 뇌는 원래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특성을 빗대어 '인지적 구두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요컨데 우리가 독서를 하는 것 보다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책 좀 읽으라는 잔소리, 한국의 성인 독서인구가 바닥이라는 통계 결과 등이 은근히 우리를 압박하죠. 이런 분위기에서 의무감으로 시작한 독서는 좀처럼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 동기부여도 잘 되고, 즐거운 법이니까요.


책을 읽는 이유는 오직 '재미'라고 말하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즉각적인 만족 대신 시간과 품을 들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는 곧 독서가 재미없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근육을 만들기 위해 헬스장에서 무거운 아령을 들고 괴로운 복근운동을 하듯 독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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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독서가 재밌어지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단계 : 책이라는 물성에 흥미를 갖는 단계


잠시 저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동화책 보다는 드라마를 보며 자랐지요. 오죽하면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해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저희 집에는 이렇다 할 전집이나 세계명작 같은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다만 주말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작은 서점에 데려가곤 하셨습니다. 주말도 없이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고 서점으로 향하셨죠. 교육에 큰 뜻이 있다기 보다는 시간 떼우기 위한 목적이 더 큰 여정이었습니다. 엄마가 요리책 코너에서 책을 보는 동안 동생과 저는 어린이 코너를 누비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랐습니다. 그럼 엄마는 두 말 하지 않고 그 책을 꼭 사주셨어요. 그렇게 사 온 책을 책장에 꽂아둔 채 읽지 않은 적이 훨씬 많지만 주말이 되면 또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는 꼭 햄버거를 사주셨어요. 덕분에 저에게 서점은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일이 독서에 흥미를 느끼는 첫번째 단계입니다.


2단계 :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단계


두번째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단계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육아'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누구에게라도 정답을 묻고 싶었거든요. 그 때 무작정 읽기 시작한 것이 육아서였습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저자의 에세이를 읽을 때는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고, 육아에 도움이 되는 자세한 정보가 담긴 책은 밑줄을 그으며 공부하듯 읽었습니다. 이렇게 독서의 절대량이 늘어나자 점점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육아서로 시작한 독서는 곧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심리서적으로 확장되었고 이후 철학, 인문학 등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독서에 대한 성공 경험을 쌓는 단계였습니다. 육아가 어려울 때 유튜브가 아닌 책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책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3단계 :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며 읽는 단계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후로 책을 읽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무작정 온라인에서 독서모임을 찾아 가입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할거리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책을 시대상황과 연결해서 읽는 방법,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며 읽는 방법에 눈을 떴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도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을 찾으며 주인공의 미래를 예측할 때 훨씬 더 몰입이 잘 된 경험 있으시죠? 내가 예측한 미래가 정확히 들어맞았을 때의 쾌감도 아실겁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곳곳에 보물찾기 하듯 숨겨놓은 복선이나 메세지를 찾고, 그 단서에 의미를 부여하며 읽으면 책이 훨씬 더 풍성해집니다. 내용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단계 더 나아가 능동적인 독자가 되는 것이죠. 이 단계에 이르면 이미 책은 재미있는 것이 되어 있을겁니다.


4단계 : 작가의 메시지를 내 삶에 적용하는 단계


마지막 단계는 책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책 읽기를 하다보면 자연스게 질문은 '나'에게 향합니다.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 '나는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는가?' 등 필연적으로 나의 생각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일도 책을 통해 간접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탐색하게 되고, 타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사고의 폭도 넓어지게 되지요. 이렇게 질문은 통해 찾은 답을 내 삶에 적용시킬 때 비로소 독서를 통한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까지 도달했다면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독서가 재미있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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