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질문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by 책봄

"사람은 호기심이 없어지면 늙는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젊음의 본질은 호기심이다.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유연한 태도를 갖는다면 정신은 나이들지 않을 수 있다. 흔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도 나이가 들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카텔과 혼은 연령에 따른 지능을 연구한 심리학자다. 연구에 따르면 지능은 유동지능과 결정지능으로 나뉜다. 유동지능은 새로운 문제를 추론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20대 중반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지식, 어휘, 경험에 기반해 사고하는 능력은 중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거나 유지가 가능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 감퇴와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순발력은 떨어질 수 있으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과 기술은 꾸준히 증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곧 배우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새로운 것을 탐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호기심을 가지면 늙지 않는다고 말한 피터 드러커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SE-004be7de-6b70-4e54-be63-4e6dd018bf1e.jpg


눈치빠른 독자라면 여기서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식, 어휘, 경험에 기반한 사고능력은 모두 책을 통해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책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술술 읽히는 경험. 갑자기 문해력 수준이 높아졌을까? 어휘력이 좋아진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가능성 높은 경우는 경험의 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미래를 예언한 소설로 꼽히며 큰 화제가 됐다.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 알제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위기 앞에 놓인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고전소설이다. 이 소설이 갑자기 급부상하며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 이유는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전염병 확산 경험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소설에 이렇게까지 열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나이게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히는 소설도 있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199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을만큼 오랜 기간 사랑받는 책이다. 주인공 안진진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남자 나영규와 낭만있고 자유로운 남자 김장우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다. 나는 20~40대 여성이 모인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미혼 여성의 경우 대다수가 김장우를 기혼 여성의 경우 나영규를 결혼상대로 꼽았다. 1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40대 여성은 모두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남자가 사는데는 더 안정적이라며 입을 모았고, 반대로 김장우를 꼽은 미혼 여성들은 나영규와 살면 재미없을 것 같다며 김장우를 선택했다. 나이와 경험에 따라 같은 책도 전혀 다르게 읽는다는 걸 알게 된 재밌는 경험이었다.


자, 이제 피터 드러커가 말한 "호기심이 없어지면 늙는다."라는 말을 "읽지 않으면 늙는다."로 바꿔보자. 꾸준히 독서하고 질문을 품고 탐구할수록 우리의 생각은 유연하게 움직인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드릴 준비를 한다. 그런 사람은 나이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다.



keyword
이전 04화답을 얻으려면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