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 전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

by 책봄

책을 집어드는 순간 우리는 이미 책과 대화를 시작한다. 표지 이미지, 제목의 단어 하나, 저자의 이름, 소개글이나 추천사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씌여진 것이 없다. 편집자와 작가, 인쇄소 등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잘 만들어진 한 권의 책을 보며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과 질문이 맴돈다.


“이건 어떤 내용일까?”

“나는 왜 이 책이 눈에 들어왔을까?”

“이 책이 나를 바꿔줄 수 있을까?”


이렇게 앞으로 나올 내용을 미리 예측하고 상상하게 되면, 뇌는 책에 몰입할 준비를 시작한다. 미리 예상한 정보와 실제 내용을 비교하며 읽다보면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내가 예측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내가 맞을까?’란 기대감은 책을 더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한다. 기존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서로 연결하며 읽는 것은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예상이 맞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보상회로를 자극해 능동적 읽기가 가능해진다.


책을 읽기 전 질문을 던지고 내용을 예측해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활용할 수 있다. 겉표지의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 후 실제 내용과 비교해보며 읽는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함께 읽었다. 이 책의 겉표지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빠와 두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혼자 집안일을 하느라 지친 엄마의 모습을 마치 다른 가족들을 업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인데 이를 알 리 없는 아들은 재미있는 예상을 했다.


“엄마가 아빠랑 아이들을 업고 놀아주는 것 같아.”

“엄마가 돼지처럼 힘이 센 거 아닐까? 그러니까 가족들을 다 업어주지.”


아이다운 이야기였다. 책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생각을 고쳐주지 않고 직접 읽어보자며 책을 펼쳤다. 아이다운 상상력 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아이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지만 책 한 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이렇게 내용을 미리 예측하게 되면, 실제 책 내용과 예측한 내용을 비교하며 읽게 되는데 이는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자신이 예측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읽을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이렇게 기존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서로 연결하며 읽는 것은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예상이 맞았을 때 나오는 쾌감은 보상회로를 자극해 능동적 읽기가 가능해진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질문들

독서 전에 질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책을 읽는 관점을 세우기 위해서다. 내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 혹은 기대하는 것을 설정하지 않고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면 금세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도중에 갈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 책은 끝까지 읽기가 어렵다. 설령 어찌어찌 완독을 했어도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수 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러시아혁명과 사회주의의 이상과 붕괴 과정에 대한 풍자를 그린 소설이다. 어린이용으로 번역된 책을 읽은 한 초등학생이 ‘이건 이솝우화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사실 이 책은 각 동물이 실존인물을 상징하며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특이한 소설로 작품해설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더라도 이를 모르고 읽으면 그저 동물 이야기로만 소비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만 따라가면 깊이를 놓치기 쉽다. 때문에 사전에 몇 가지 정보를 미리 알고 독서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1) 시대적 배경 알아보기

고전소설처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배경이라면 책을 읽기 전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굉장히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미국은 ‘재즈 시대’라고 불리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술 판매가 금지된 금주법 시대였지만 역으로 불법 밀주가 성행하며 그 과정에서 신흥 부자들이 탄생했다. 주인공 개츠비는 가난한 과거를 딛고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나타난다. 소설 속에 그의 명확한 직업이 등장하지 않지만 불법적인 경로로 부를 쌓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금주법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가 불법 밀주를 통해 부를 얻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즉, 그의 부는 단순한 성공이 아닌 부패한 시대의 상징인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경제대공황이 오기 직전 가장 호화롭던 시기로 돈과 사치, 파티, 향락적 소비에 만연했던 시기다. 실제 등장인물들은 골프, 폴로, 파티 등을 취미로 삼는데 이들이 고급 스포츠에 빠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으로 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주식투자 열풍과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한 몫 한다. 개츠비는 부자가 되어 첫사랑 데이지와의 사랑을 꿈꾸지만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또한 부동산과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신흥부자’와 ‘기존 귀족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대를 알고 이 소설을 보면 시대작 상황을 얼마나 비유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 작가의 생애 알아보기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작가의 생애와 소설을 연결하며 읽은 것도 흥미롭다. 작가 역시 한 사람이고 그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이야기에 녹여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애를 알고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작가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때 온라인 상에서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거야?’ 라는 질문이 유행했었다.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돌발질문으로 널리 퍼졌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벌레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성실한 남자 그레고르였기에 처음에는 가족들도 그를 걱정하며 챙겨주지만 점점 벌레로 변한 그를 혐오하며 거리를 두고 그레고르는 점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이 소설을 하마터면 우리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몸이 약한데다 아버지와의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그는 평생을 강박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하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만 40세의 젊은 나이게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생전에 친구에게 자신이 쓴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다행히 친구 막스 브로트는 그의 뜻을 거스르고 원고를 모아 출간한다. 결과적으로 카프카는 사후에 더욱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만약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영 그의 작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극적인 그의 생애를 알고 소설을 읽으면 <변신> 속 그레고르가 카프카 자신을 반영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카프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에 빗대어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적어내려 갔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작가의 생애를 알고 책을 읽으면 소설 속 주인공이 살아있는 듯 더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다.


3) 당시 평가나 반응 알아보기

어떤 고전소설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왜?’라고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그랬다. 이 작품은 부랑자 프랭크가 외딴 식당에서 매혹적인 여자 코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두 사람이 코라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면서 펼쳐지는 치정극이다. 인간의 파멸과 욕망, 범죄 등이 버무려진 이 소설은 언뜻 보기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현대의 막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여전히 고전으로 불리며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 이 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현대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소설이 발표된 당시만 해도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 문학의 시초로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큰 열풍을 일으켰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필름 누와르의 원형이 되었다. 이전까지 문학은 대체로 도덕적인 사랑과 교훈적인 결말 등이 일반적이었지만 케인은 그런 틀을 깨고 원초적인 사랑과 욕망, 파멸을 그린 것이다. 당시의 평가나 반응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단순히 자극적인 이야기로 소비해버리기 쉽지만 당시 시대의 평가와 파급력을 알고 읽으면 소설의 새로운 면이 보였다.

이처럼 책을 읽는다는 건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뿐 아니라 책이 태어난 시대와 맥락을 함께 이해하고 현재의 독자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을 이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변하지 않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눈은 독자가 아는 만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깊이 있는 독서를 경험한 독자라면 누구라도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던질 수 있는 질문들]

1. 이 책은 언제 씌여졌고, 시대적 배경은 어떠한가?

2. 작가는 이 책을 어떤 상황에서 썼는가?

3. 작가의 생애와 책의 내용을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는가?

4. 작품이 발표된 당시의 대중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5. 수상한 경력이 있는가? 있다면, 당시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어땠는가?




keyword
이전 08화AI시대 질문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