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익혀야 할 것(한글, 연산, 젓가락질), 사야 할 것(책가방, 필통, 실내화) 등. 하지만 그런 것보다 우리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준비시켜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앞서 알려드렸다.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 교사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면 이미 학교생활은 절반 이상 성공이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앞으로 우리가 초등생활 전반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필수역량들이 많지만, 크게 4가지를 초등생활의 핵심역량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는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초등생활에서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자존감이 바탕이 될 때 모든 학교생활이 수월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아이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도, 학습도 어렵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학교에는 자존감이 낮은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아이들, 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만 의존하는 아이들. 아마도 사회 전반에 퍼진 비교와 경쟁이 아이들에게도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몇 해 전, 소위 학군지에서 있던 일이다.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던 한 3학년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성실히 공부했고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하루는 수학 시험지를 채점한 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스스로 무엇을 틀렸는지 확인하라는 의미였다.(다행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기 전 학생이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체크하는 습관이 있다.) 잠시 뒤, 그 모범생 아이가 시험지를 들고 찬찬히 걸어 나왔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채점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한 문제를 가리켰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는 미처 다 닦아내지도 못한 지우개 가루와 함께 고친 흔적이 역력한 답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불안해 보였고, 위태로워 보였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수학 시험에서 하나도 틀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틀리면 시험을 잘 본 것이 아니라고 했다. 더불어 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집에서 맞는다는 슬픈 이야기까지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날 아이를 혼내지 못했다. 다만 아이를 안아주며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중에 수학 문제를 다 맞아 100점의 영광을 회복하더라도, 그 아이의 자존감은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자존감은 건강한 실패를 여러 번 경험하며 차곡차곡 쌓인다.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좌절내구력이 생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존감은 어느 때보다 성장한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실패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극복할 수 있어.'라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초등학교 시절은 바로 이 건강한 실패를 통한 자존감이 충분히 쌓여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내 아이가 실패를 하고 돌아왔을 때,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면 된다. 아이들의 실패를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면 그것으로 부모의 역할은 충분하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 누구나 성공을 하기 전에는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도전을 하여 실패하고, 또 극복하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가 100점을 맞지 못했다면, "괜찮아, 네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보자. 고생했어."라고 말하면 되겠다. 우리 아이가 달리기에서 꼴찌를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뛰는 모습이 멋있었어. 엄마도 달리기 꼴찌 한 적이 있는데, 그다음엔 좀 더 잘했어. 다음 달리기 시합 전에는 같이 연습해서 좀 더 빨리 달려보자."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실패를 극복할 힘이 쌓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자존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조그만 실패에도 좌절하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충분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1학년 담임교사를 하다 보면 학기 초에는 하루 걸러 하루로 이런 연락을 받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오늘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어요. 혼내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오늘 아이가 준비물을 못 챙겨갔어요. 제가 바빠서 못 챙겼는데 한 번만 봐주세요." 이런 이야기는 곧 나에게 "선생님 우리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주세요."라고 들린다.
그래서 나는 불안한 어머님들의 불안한 목소리에 이렇게 답한다. "어머님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믿어주세요." 준비물을 안 가져왔다고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도,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도, 그래서 다음에는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불안한 부모에게서 불안한 아이가 나온다. 아이를 믿고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실패를 딛고 아이의 마음에 단단한 힘이 생긴다. 나는 언제나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자존감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