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ientist 1화 - 반증가능성(1)

인간은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려 한다.

by 다비

나는 국내 최고의 이과 대학인 K학교를 졸업한 뒤, 존경하던 AA 교수님의 제자로 대학원생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수님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그는 나에게 한 사람을 추천해주며 만나보라 하였다. AA 교수님이 어릴 적, 그와 대화를 나누며 과학자의 자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내게 주신 주소는 어느 서해안 바닷가 근처, 어촌이라기엔 바다에서 15분가량 걸리는 농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노인을 만났다.


나: 안녕하세요. AA 교수님이 소개해주셔서 왔습니다. 어르신과 대화를 나눠보라 하셨어요. 저는 K대학에서 학부를 물리학 전공으로 졸업했고, 현대물리학 이론들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학부생 치고 상대성이론은 깊이 공부했고,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나름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노인: AA 교수가 보냈다고? 뭐하러 온 거지?


나: 음… 사실 제가, 학부 성적도 좋고 공부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A교수님은 지금은 저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과학에 대해서 어르신께 많이 배울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여기로 와보라 하셨습니다.


노인: 그래? 상대성이론을 잘 알고있다고?


나: 네 나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께선 과학이론을 많이 알고계신가요? 제가 봤을 땐 농부신거 같은데, 연구하다 은퇴하신건가요?


노인: 나는 과학연구같은건 한 적 없어. 최신과학이론도 잘 몰라. 그런데 자네는 상대성이론을 안다고 했는데, 안다는 게 뭔지는 아나?


나: 네? 안다는 게 뭔지 아냐고요? 그런건 당연히 알죠.


노인: 그렇구만. 자 그럼 여기 땅을 보게. 붉은 흙이랑 검은 흙이 있지? 나는 요 씨앗을 검은 흙에만 심는다


네. 내 말을 잘 알아들었지?


나: 네. 그럼요.


노인: 그럼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해보게.


나는 노인의 말에 얼른 검은 흙을 뒤져보았다. 노인과의 기나긴 대화의 여정은 이때 시작이었던 것 같다. 노인은 대뜸 내 뒤통수를 후리며 말했다.


노인: 에이, 이놈아! 아는 게 뭔지도 모르는 놈이구만! 이모양이니까 AA가 안받아주지. 아직 한참 멀은 놈이구만.


나: 예? 그게 무슨 말씀…. 아니 그리고 왜 갑자기 때리는거에요?


노인: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까 니가 자격이 없는거다. 과학은 무슨 과학.


나: 아니, 왜 이런 얘길 하시는지 설명은 해주셔야죠!


노인: 알고싶으면, 여기 붉은 흙밭이랑 검은 흙밭 다 갈고 저어기 집으로 들어와라.


노인은 그렇게 얘기한 후, 밭 가는 것을 잠시 직접 시범보여준 뒤 쟁기를 나에게 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해가 질 무렵까지 밭을 갈고나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노인이 들어간 집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어떤 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노인: 어 그래. 밭은 잘 갈았나?


나: 네, 그럼요. 하다보니 재밌던데요?


노인: 그럼 나대신 매일 해 주던가. 푸하하. 아무튼간에, 여기 내가 자네 가르치느라고 카드를 좀 만들었다네. 여기 카드에는 한 면에는 숫자, 한 면에는 그림이 있지. “3의 배수 뒤에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있다,”라고 나는 지금 말하겠네. 그러면 자네는 내 말이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 두 번만 카드 뒷면을 볼 수 있으니 확인해보게나.


테이블 위에는 카드가 네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6, 하나는 8, 하나는 강아지, 하나는 나무 그림이 있었다. 나는 우선 6을 뒤집어 보았다. 말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당연스럽게 동물그림인 강아지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앗차 하며 깨달았다. 카드 뒷면에는 7이 적혀 있었다. 나의 표정을 보았는지 노인이 말하였다.


노인: 이제 알겠나?


나: 네…. 이거였군요. 저는 나무그림을 확인해야 했어요. 나무그림 뒤에 3의 배수가 있다면, 어르신께서 얘기한 것은 거짓이 되었겠군요. 반대로 동물그림 뒤에 3의 배수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적어도 어르신께서 3의 배수 뒤에’만’ 동물 그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다면 말이죠.


노인: 그래. 어떤 명제가 참인지 확인하려면 그 명제를 반증할수 있는 사례를 확인해야 하네. 논리를 다룰때에는 대우명제라고도 하지.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면 자네는 역, 이, 대우 중에 확인하려는 명제와 무관한 ‘이’ 명제를 확인한것과 같지. 그렇게해서는 진실을 가릴 수 없어. 단지 자네가 믿고자하는 것에 대한 확신만 강해질 수 있을 뿐이지. 그렇게 해서는 과학을 할 수 없네.


스크린샷 2025-06-23 오후 11.06.25.png 원 명제는 대우 명제와 성립여부가 일치한다. 역 명제와 이 명제도 마찬가지다.


나: 네. 하지만, 저도 바로 알았어요. 실수였다고요.


노인: 아까 흙에서도 실수였나? 반증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자네는 붉은 흙을 파 봤어야지. 붉은 흙 안에 씨앗이 있다면 내 말은 틀린 것이 됐을 테니까 말이야.


나: 네 맞는 말씀이예요. 하지만 저도 그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구요. 이런것은 저도 알고 있어요. 연구실에서라면 저도 그렇게 했을거에요. 그런데 연구실과 일상의 삶은 다르잖아요.


노인: 자네의 말은 과학적인 사고는 일상의 삶과는 전혀 다른것이라고 말하는것 같네만?


나: 그렇죠. 어떻게 일상에서 계속 과학적으로 사고하며 살겠어요?


노인: 이런게, AA와는 결이 맞지 않았을 수 있겠구먼 그래. 하나 묻겠네. 그렇다면 자네는 왜 과학을 하려

고 하는가? 자네의 삶과는 상관도 없는데.


나: 네? 그게 무슨….


노인: 자네 삶과는 상관도 없는 과학을 왜 하냐 이 말일세.


나: 아니…. 과학 연구하면 역사에 이름도 남길 수 있고…. 인류의 삶에 기여도 하고, 그렇잖아요.


노인: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라…. 그런 인물중에 과학자는 그렇게 비중이 큰 것 같지는 않네만. 인류의 삶에 기여? 사실 말하기 너무 추상적인 가치로 느껴지지만, 대략 그렇다고 쳐도 과학자가 되기보단 봉사활동을 해도 그만이지. 그런 야심은 과학자가 되기엔 어울리는 욕망은 아닌 것 같네. 그러기엔 과학자보다 쉬운 길이 많아. 과학자로서 그런 인물이 될 확률은 지극히 낮지.


나: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잖아요. 그냥 그 중 하나인데, 적성에 맞으니까 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노인: 적성에 맞는다? 하지만 오늘 자네 삶의 기본 태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 오늘 일들은 그냥 실수에 불과해요. 저도 이런 논리에 관한것들을 다 배웠고요, 기억하고 있어요.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이러지 않는다고요.


노인: 자네는 물컵이 떨어질 때, 깊이 생각하고 손으로 잡나?


나: 아….


노인: 그런거라네. 적어도 과학자로서 산다는 것은 태도의 문제일 수 있지. 내 생각에 자네가 말한 것들은 과학자로 살기로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네. 과학자라면 진실을 알고자하고, 그 진실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표현하고자 해야하네. 이를테면 수학적 언어겠지. 그리고 아까 자네가 경험한 상황들을 통해 이해했겠지만, 어떤 것을 이론으로서 주장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반증될 수 있는지까지 포함되는 앎이 전제된다네. 그리고 중력법칙에 대해 반사적인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듯, 그렇게 체화되는 것까지가 포함될 수 있다네. AA가 보기에 자네는 과학자로서의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나: 하지만, 이런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노인: 적어도 내가 보기엔 무엇보다 중요하지. 과학을 하려면 과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야. 과학은 반증가능성있는 명제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네. 따라서 과학 이론이라는 것 또한 반증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의미가 있지. 절대적인 명제따위, 과학에서는 의미없는 것이라네. 끊임없는 반증의 시도, 그것이 과학의 근본적인 발전을 만들었겠지.


나: 네. 그런 부분은 저도 이해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가 AA 교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노인: 이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네. 게다가 이 뿐만이라 해도, 이 태도의 문제는 중요한 거야.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참이라고 생각한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 줄 자료만 탐색한다네. 반사적으로 말이야. 그렇게 해서는 계속 자기 주장이 참이라는 확신만 강해지고, 고집쟁이가 되겠지. 사실 세상 사람들 사이의 많은 문제는 그렇게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자기 삶에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말이야. 사실을 알려 하기보다는, 기존의 생각을 확신하고싶어만 하지. 그리고 과학자란 정확하게 그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네. 사실이 내 생각과 아무리 다를수 있을지라도, 그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사람들이야.


나: 네…. 듣고나니 숙연해지네요. 할 말이 없어요.


노인: AA는 어릴적에 나와 대화나누며 이런것들을 익혀갔지.


이 대화 후, 나는 며칠 더 머무르며 노인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