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ientist 2화 - 반증가능성(2)

세상엔 길게 얘기나눌 필요 없는 주장이 많다

by 다비

대화에서 무언가 느낀 나는 노인에게 머물러도 좋은지를 물었다. 노인은 생각보다 쿨한 남자였다. 나에게 머무를 수 있는 방을 안내해주었다. 하룻밤을 지낸 뒤, 노인은 아침식사를 대접해주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 벤치에 앉아 우리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대화를 열었다.


나: 어르신, 이제 제가 반증가능성에 대해 좀 알게 되었으니 AA교수님이 제자로 뽑아 주시겠죠?


노인: 그 주장에 대해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생각해 보게.


나: 네? 그건 또 무슨 얘기에요.


노인: 일단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니, 자네는 아직 반증가능성을 체화한 정도로 알지는 못하는 것 같군. 자네 주장을 반증할 것도 없이, 이대로는 AA가 뽑아줄 가능성은 낮겠네.


나: 아니 정말... 너무 악담만 하시는 것 같군요.


노인: 우쭈쭈해주길 원하면 그냥 동네 누나나 찾아가지 그러나? 여기 있으라고 한 적이 없네만.


나: 그건 그렇죠... 그럼 이참에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생각해보라는게 무슨 얘기인지 알려주세요.


노인: 그래. 그정도는 할 수 있겠지. 자네가 기본적으로 갖는 생각을 한번 명료화해보자구. 자네는 이렇게 관측하고 있는게지. 자네는 AA에게 뽑히지 못했고, 자네는 어떤 기준이 되는 지식을 갖추지 못했어. 그렇기때문에 AA가 뽑지 않는 사람은 기준이 되는 지식이을 갖추지 못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과 같겠지? 여기서 기준이 되는 지식에는 반증가능성에 대한 것이 포함될 것이고. 맞나?


나: 네. 그게 맞네요.


노인: 대략 이정도면 과학적으로 생각해볼 수는 있는 주제구만. AA가 뽑지 않는 사람은 기준이 되는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반증해보려면 그 기준이 되는 지식을 갖추고 가보면 알 수 있겠네. 자네 말이 맞다면 지식을 갖추면 뽑아야 할테니 말일세. 그리고 자네는 결국 자기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지.


나: 왜 그렇게 악담만 하세요!


노인: 이걸 악담이라고 생각하는겐가? 사실 악담이라는 개념엔 나는 크게 관심은 없네. 적어도 나는 의미있는 것에 대해 올바르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나: 에휴.... 알겠어요. 그런게 과학자적 태도라는 거죠? 그래도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AA교수님이 제자로 과학에 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는게 맞지 않나요?


노인은 그냥 커피만 마셨다.


나: 맞잖아요? 과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고, 공정하게 뽑으려면 과학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아야 될거잖아요. 그게 맞는거죠.


노인은 계속 별 대답 없이 숲이나 구름만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동의하는지를 묻자, 그는 마시던 커피를 나무옆에 침을 뱉듯 뱉어버렸다. 나는 놀라서 그를 보고 있었다.


노인: 자꾸 의미없는것에 대해 내가 말을 해야한다고 강요하지 말게.


나: 네? 의미가 없다구요?


노인: 적어도 나에겐 자네의 주장은 이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네. 이 세상은 요정이 창조했다.


나: 네? 뭐라구요? 그게 무슨소리예요.


노인: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아직도 자네는 멀었네. 어쨌든 얘기가 시작되었으니, 설명해 주겠네. 우선 자네 주장엔 반증가능성이 없어. 그리고 반증가능성이 없는 주장은 굳이 이러니 저러니 길게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네. 그리고 반증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두 주장은 비슷한 주장이지.


나: 그렇긴 해도, 저는 적어도 현실에 대한 주장이잖아요. 다르죠.


노인: 물론 반증가능성이 없는 주장 또한 종류를 나눌 수 있겠지. 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네. 공허한 주장, 치사한 주장, 독선적 주장으로 말이지.


나: 흠.... 그것 참 그럴듯한 이름들이긴 하네요.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노인: 그래. 공허한 주장은 아까 내가 말한것과 같은 것이네. 세상은 요정이 창조했다는 것과 같은 종류이지. 이러한 주장의 특성은, 지금 우리가 삶에서 접하는 현상들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이라네. 지금 우리가 일상의 일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요정이 창조했든 창조하지 않았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지. 그래서 나는 공허한 주장에 대해서는 굳이 대화나누지 않는것이지. 내가 오늘 오전에 밭을 갈아야 할 지 나무들에 가지치기를 해야할지에 대해, 요정이 세상을 창조한 일은 아무런 선택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네. 적어도 과학자적 태도로 얘기하고자 한다면 말이지.


나: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선택에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잖아요? 예를들어 번개가 치면 무슨 신이 노하셨으니 제물을 바칠수도 있구요.


노인: 내 입장에서,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번개를 치는 신이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라네. 실제로 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믿으면 행동은 달라지지. 그렇기때문에 번개를 치는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대화하지 않는 것일세.


노인은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잠시 침묵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 얘기해야 할 내용이 써있기라도 한 듯이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노인은 다시 입을 떼었다.


노인: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행동을 위한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을 위한 근거가 되는 예측이 있겠지. 공허한 주장은 우리 주변 삶의 현상을 예측하는 데에 아무런 변화를 낳지 않는 것이지. 다시 예를 들자면, 여기 내 밭에 투명드래곤이 서 있다고 해봅세. 투명드래곤은 투명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질량도 없다고 해보지. 어떤 물질성도 없어서 우리가 감지할 수가 없네. 그저 이 밭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투명드래곤이 밭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가 이 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떤 예측을 할 때 아무런 변화도 낳지 못할 것 아니겠나?


나: 그렇죠. 그래서 공허한 주장이라고 하시는거군요. 그러면 또 뭐가 있었죠? 치사한 주장이었나요?


노인: 그렇지. 그리고 독선적 주장.


나: 치사한 주장은 뭔가요? 이름이 참 재밌네요.


노인: 치사한 주장은 반증가능성이 이론적으론 있지만 그 방법을 실제로 수행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들이지. 예를 들어 황금사과가 열리는 사과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해보지. 즉 이 말을 명제로서 명료화 한다면 이렇겠지. "사과나무라는 집합이 존재한다면 그 안에는 황금사과가 열리는 것이 적어도 하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반증하려면 황금사과가 열리는 사과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지.


나: 네. 참 복잡하게도 얘기하시는군요.


노인: 어쨌든 굳이 논증을 해야한다면 정밀하게 하는게 좋겠지. 사실 처음부터 명료하게 얘기했으면 복잡하지 않았겠지만, 일상 언어가 그런 식으로 습관화돼있는것을 어쩌겠나. 아무튼 얘기를 이어가자면, 황금사과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하겠나?


나: 황금사과나무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을 통해 증명하면 되겠죠?


노인: 그래 그런식으로 판단 내린다면 나름의 합리성은 있겠지. 하지만 이 주장이 치사한 것은 여기에 있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뿐, 관측되지 않은 곳에 황금사과나무가 있을 가능성은 부정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겠나?


나: 음... 모든 사과나무를 조사해야 하나요? 그야말로 치사한 주장이군요 확실히.


노인: 그래, 그리고 실질적으로 의미를 갖기도 어렵지. 그래서 사람들은 통계학을 발달시켜서 많은 명제를 통계적 명제로 만드는 것이지. 치사한 주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처라고도 할 수 있겠네.


나: 그러면 모든 것에 통용되는 법칙을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인: 보통은 보편적 명제에 반대하고싶은 사람들이 치사한 주장을 하게 되지. 어딘가에 단 하나의 예외가 있을 수 있지 않냐는 식이지.


나: 그리고, 통계학은 치사한 주장에 대해 보편적 명제를 보호하기 위한 대처라는 거군요.


노인: 그래. 아까의 주장에 대해 예를 들면 "현재까지의 표본조사에 의하면, 모든 사과나무중에 황금사과나무가 있을 확률은 0.1%보다 작다." 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 그러나 치사한 주장은 여전히 너무나 치사해서, 이 주장으로도 완전히 반박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치사한 주장에 대해 굳이 길게 얘기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공허한 주장처럼 치사한 주장 또한 지금 관측되고 있는 범위, 즉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드러나는 현상과는 무관하기도 하지. 어딘가에 황금사과나무가 단 하나는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내 주변의 사과나무를 다루거나 관련된 예측을 하는 데에 사실상 영향을 줄 수가 없지. 즉 내가 굳이 길게 얘기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삶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판단하고 예측하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일세.


공허한 주장은 공허하고, 치사한 주장은 치사하다. 노인의 말을 듣다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 대해 길게 얘기 나누지 않는다는 노인에게도 동감이 되었다. 공허한 주장과 치사한 주장은 나 또한 그에 대해 길게 대화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처음 주장이 이런 주장들과 동일하다니, 그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 "과학연구기관에서 과학지식이 많은 학생을 뽑는게 맞다"는 주장이 길게 얘기나눌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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