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좋아하면서 살면 된다.
나는 적어도 내 주장이 길게 대화나눌 필요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요정이나 투명드래곤과 같은 부류의 얘기로 취급된 것이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나: 하지만 어르신의 말씀이 맞다고 해도, 연구실이 과학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맞지 않나요?
노인: 누가 봐도라고 하기엔, 내가 자네 앞에 있다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말이야.
나: 어휴, 어르신은 예외적인 사람이구요.
노인: 그런식으로 주장하다간, 자네가 AA 밑에서 연구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구먼.
나: 그러면 어르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연구실이 과학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지 않아도 된다는거예요?
노인: 아까 말했듯, 이런 주장은 굳이 길게 논증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명제야. 내가 나눈 것으로 보았을 때에는 독단적 주장이지. 물론 반증가능성이 없고 말이지.
나: 일단 독단적 주장이라기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걸요? 그리고 반증도 가능하죠.
노인: 몇명이 함께하든, 독단적인 것은 독단적인 것이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투명드래곤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치사한 주장인 것이고.
나: 반증가능성은 있잖아요?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을 뽑은 랩과 비교할 수도 있구요.
노인: 그때 반증되는 것은 자네의 주장과는 무관하다네.
나: 그건 무슨 뜻이죠?
노인: 지금 이런식으로 얘기하는 것 아닌가?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으면, 연구 성과라던가 어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말이야.
나: 그렇죠. 연구데이터가 찾아보면 어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노인: 그래, 그렇게 얘기해볼 수 있겠지. 그런 데이터들을 통해 반증 할 수 있으니 자네의 처음 주장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연구실에서 뽑아야 한다."가 반증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맞나?
나: 네. 단순 의미없는 얘기들과는 다르죠.
노인: 하지만, 그런 데이터들이 반증해줄 수 있는 것은 자네 주장이 아니야. 단지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는 일이 결과, 예를 들면 연구성과지표에 향상을 가져온다, 혹은 가져오지 않는다 하는 것들 뿐이지.
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노인: "연구실은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으면 연구 성과지표에 향상을 가져온다." 이 두 명제는 전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지.
나: 아니, 연구실이 연구성과지표에 향상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노인: 지금 자네는 두 명제를 연결하기 위해, 하나의 전제를 더 추가하고 있어. 연구실이 연구성과지표에 향상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지. 그 연결고리가 있다면, 어쩌면 자네의 처음 주장은 반증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자네가 추가한 전제조차,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네. 똑같이 반증가능성이 없지. 어디까지나 반증 가능한 명제는 여기서 하나야. "과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으면 연구 성과지표에 향상을 가져온다."라는 명제 뿐이지. 나머지는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네. 반증가능성이 없지.
나: 말문이 막히네요... 선생님은 그냥 전제라고 하시지만, 연구실이 연구성과지표를 향상시켜야 하는것은 당연하지 않아요?
노인: 계속 그렇게 대답을 강요해봤자, 나는 그렇게 해야하는지 아닌지는 모르네. 단지 AA가 그 전제에 동의한다면 자네의 말에 설득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구만.
나: 그럼 연구실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건데요?
노인: 그런것에 대해 내가 주장이 아예 없지는 않아. 하지만 말했듯이 내가 얘기를 해도 독단적 주장일 뿐이야. 그것으로 자네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대화같은 것은 하고싶지 않네. 단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 뿐이지. 나 또한 독단적 주장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네. 단지 그거로 왈가왈부하는데 시간낭비하고싶지 않을 뿐. 자네도,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다면 그에 따라 살면 그만이라네. 나에게 독단적 주장을 어떻게는 논리적으로 승복하게 만들려 하지 말고 말이야.
나: 그러니까, 독단적 주장이란 것은 각자 삶의 태도나 윤리적인 주장들이라고 얘기하시는 거죠?
노인: 그렇지. 윤리란 언제나 독단적이라네. 하지만 그만큼 삶에 중요한 것도 없지. 나는 그것을 침해받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내 독단적 주장으로 타인의 윤리를 침해하지도 않네.
나: 그러면, 그냥 각자 좋을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건가요?
노인: 그렇게 묻는다면, 그렇지. 독단적 주장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지만, 동의하는 사람끼리는 나누고 거기서부터 논의를 창출해나갈 수 있겠지. 어떤 부분에선 함께 일을 해나갈 수도 있을테고 말이야. 자네도 자네 전제를 버릴 생각이 없다면, 굳이 AA와 함께 가려고 할 필요가 없을걸세.
기가 찬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장 달리 뭐라 반박해야 할 지 떠오르는 말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커피한잔을 한 뒤 나는 방에 들어가 한참을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