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의 파동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은 언제나 정직했다. 내가 두려움을 비추면 두려운 현실이 나타났고, 내가 감사를 비추면 감사할 일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거울은 단순히 나를 ‘비추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을 ‘상영해주는’,
마치 극장의 스크린과도 같았다.
이 세상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매 순간 내 의식이 선택하고 재생하는 필름의 프레임이다.
매 순간 내가 선택한 한컷 한컷의 장면이 모여 ‘삶’이라는 장편 영화가 완성된다.
의식의 창조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들 중 내가 어느 파동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달린 ‘선택’의 문제였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무한한 우주 속에는 무수히 많은 ‘나’와 ‘스텔라’, 그리고 또 다른 현실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세계에서는 우리가 이미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여전히 미숙한 채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은 물리학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되어 왔다.
미국의 물리학자 휴 에버렛은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를 풀기 위해 ‘다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을 제안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파동은 결코 하나로 붕괴되지 않는다.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 모든 가능한 결과가 각각의 독립된 우주에서 동시에 실현된다.
그러니까 ‘선택하지 않은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단지 다른 차원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길을 보지 못할 뿐, 그 길 위의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평행우주에서는 스텔라가 자유롭게 말하고, 웃고, 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의 나는, 아이와 함께 평온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행복한 우주’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선택은 단순한 상상이나 위로가 아니었다. 나의 ‘의식’이 향하는 곳, 내가 진동을 맞추는 곳이 곧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결정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 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진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진입하는 우주는 달라진다.
즉, ‘의식의 창조력’이란 무한한 필름 중 하나를 재생하는 선택의 기술이었다.
마블의 2022년작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차베즈를 구하기 위해 무수한 평행우주를 여행하며 다른 자신들을 마주한다. 어디선가는 영웅이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이미 죽어버린 존재, 혹은 악의 화신으로 살아간다.
또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도 주인공 에블린은 무한한 가능성의 차원 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버전들과 연결된다. 성공한 배우, 요리사, 무술 고수...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녀가 깨닫는 건 단 하나였다.
그 모든 세상을 구하는 힘은 ‘다정함과 사랑’이라는 것을.
“우린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에블린의 이 말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모든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는 우주에서 ‘어떤 파동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정함만 있다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설사 그것이 다른 우주에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고 세 번 다 오열했다. 그녀가 딸을 구하기 위해 모든 차원을 넘나드는 모습은, 내가 스텔라를 위해 싸워온 지난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딸을 구한 것은 초능력도, 물리학도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는 사실. 그것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차베즈에게 말한다.
“너 자신을 믿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하는 열쇠는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 인지도 모른다.
물론 다세계 해석은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과 믿음, 다정함의 힘이 현실을 바꾸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믿는다.
다른 차원의 평행우주에는 정상발달한 스텔라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세계와 내가 지금 이 순간 연결되어 있다고.
그 우주로 건너가는 방법은 단 하나,
지금 이 한 줌의 시간을 사랑과 감사로 채우는 것.
스텔라와 함께 웃는 이 순간,
이미 나는 그 세계로 진동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의 결말은 언제나 같다.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