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항공사 면접만 세 번

꿈 없는 나에게 찾아온 작은 용기

by 여원


나는 오래도록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적당한 학교, 적당한 성적, 적당한 회사.

그 틀 안에서 살아가면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 믿었다.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생각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가장 ‘멋진 삶’이라 여기고 있었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적당함.

그것이 나의 기준이었고, 동시에 나의 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끄럽지 않으려 애쓰던 시간들만이 오히려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사람은 익숙한 길을 꿈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승무원 어때? 한번 해봐.”


승무원?


처음엔 별 감흥은 없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에 오래 남았다.

‘한 번 해볼까?’

그때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독한 집순이에 체력은 약하고 낯가림도 심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승무원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몰랐기에, 어쩌면 조금은 용감할 수 있었다.


첫 지원서는 ‘준비’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급히 딴 토익 점수, 급히 작성한 이력서.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다. 아주 말끔하게.


첫 실패는 흔들렸지만,

두 번째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진짜 해보고 싶다.’

작은 호기심이 마음속 결심으로 자라났다.


외국어 성적을 올리는 건 기본,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던 발음과 자세까지 고쳤다.

모나미 볼펜을 물고 발음을 연습하고,

동영상을 찍어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늘 노력대로만 흐르지 않는다.

면접관들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애타는지, 얼마나 간절히 준비했는지를.

어쩌면 그 ‘너무 열심히’가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국인은 삼세 번이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세 번째 서류를 넣었고,

이번엔 합격했다.

이 회사, 참 정 많다. 세 번이나 기회를 주다니.


면접장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마치 ‘자주 가던 집 앞 스타벅스’처럼 익숙했다.

두려웠던 면접관님들도 어느새 동네 어르신처럼 보였다.

두려움도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결국 용기가 된다.


그날의 첫 질문은 이랬다.

“면접 끝나고 무슨 계획 있으신가요?”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엉뚱하게 답했다.

“이렇게 추운 날엔 순대국밥이 최고예요. 순대국밥 먹으러 갈 생각입니다.”


순간 면접장이 멈췄다.

정적 뒤에 웃음이 터졌다.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곳의 공기가 조용히 풀리는 게 느껴졌다.


가장 엄격해 보이던 임원분이 말했다.

“공항 근처에 순대국밥 맛집 있는데,

합격하면 같이 갑시다?”


나는 씩씩하게 “넵!” 하고 대답했다.


스몰토크 후 더 자연스럽게 면접에 임할 수 있었고,

그 후로 나는 배웠다.

진심은 통한다는 걸.

때로는 너무 솔직해도 괜찮다는 걸.

사람들은 진심 앞에서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연다.


며칠 뒤, 12월 24일.

이 회사 참 잔인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합격자 발표라니, 산타도 바빠서 미뤘을 듯한데.


친구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에 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켰다.

눈을 한껏 크게 뜨고 확인했다.


‘합격’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극 내향형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류장의 사람들은 “저 사람 뭐 된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혼자 다 받은 기분이었다.


물리치료 중이던 부모님은 의사 선생님은 물론

옆에 누워 있던 얼굴도 모르는 환자분에게까지

“우리 딸 붙었대요!” 하고 자랑하시더니,

‘치료고 뭐고 일단 딸부터 보자’며

순식간에 집으로 달려오셨다.


집 앞에서 우리는 서로 껴안고 한 바퀴 돌았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또 한 번 쳐다봤다.

‘저 집 무슨 경사 났나.’


평범한 하루가 기적 같은 날이 된 건,

그 기쁨을 마음 다해 함께해 주는 내 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시작이 두렵다면,

한 가지만 마음에 두자.

서툼은 결코 흠이 아니고,

실패는 당신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

작은 용기 하나가 길을 열고,

그 길이 다시 당신을 이끈다는 것.


그 끝에서,

당신은 반드시 지금의 불안을 건너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미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