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나와 너는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떡볶이를 쩝쩝 먹으며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끔 바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
"웬 바람?"
"그냥. 남한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바람이 되면 '나'라는 인식 자체가 없으니까 남을 정말 온전히 응원할 수 있잖아? 그리고 내가 바람이라면 무언갈 잘 못 해도, 짐은 되지 않을 거 아니야."
그래,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내가 바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아플 때나 양심도 없이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때, 진심으로 난 그저 순수한 바람이 되기를 바랐다.
바람은 '나'라는 것이 없으니까 내가 아니라 '남'을 순수하게 응원하고 사랑할 수 있고, 나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지니까.
바람이 되면 그 예쁜 마음만 갖고서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사람들을 예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니까. 그것만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게다가 바람은 가볍다. 내가 무언갈 잘 못 해도, 짐이 되지는 않을 거다. 짐이 되지 않으니 미움도 받지 않고, 내가 미워할 필요도 없고.
어릴 때부터 태어난 내 존재 자체가 짐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그치만 지금의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그런 나에게 해야할 것은 산더미고, 그런 연유로 남을 예쁘게만 바라보기에는 내 마음에 여유가 없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온전히,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도하는 그런 바람.
그런 바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더 깊이 말하려다가 말고 말을 꾹 삼켰고, 그런 나에게 너는 말했다.
"남을 온전히 응원하려고 자기를 버리고 바람이 되고 싶다고?"
"그건 너무 바보 같아. 나는 차라리 나를 버리고 남을 응원하는 바람이 되느니 남을 버리더라도 나를 응원하고 지키는 강한 사람이 되겠어."
그런 너를 보며 학창시절 한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차가운 밤공기와 어우러지던 그 날의 친구의 단호한 말투와 함께.
.
.
.
"나 눈 안 보인단 말이야. 안경 도수가 안 맞아서..."
"그럼 바꿔!"
"안 돼. 그럼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엄마가 나 눈 시력 더 떨어진 걸 알면 엄청 싫어하실 거야."
"그럼 말해~ 엄마가 나한테 이런 유전자를 줬는데 어떡해요~? 엄마도 나였으면 이러실 거에요~? 이러실 거냐구요 예~? 대답해 보세요 어머니~"
아하하
시시비비, 부모님에 대한 무례함, 도덕 그런 걸 떠나서 그 아이의 속 시원한 농담에 나는 정말 크게 웃었다. 그 아이는 웃음으로 모든 걸 승화시키는 아이였다.
그 뒤에도 쉴 새 없이 이어진 우리의 대화에서, 그 애는
"왜 가만히 있어? 말해! 너도 똑같이 해주면 되잖아." 를 반복했다.
그 아이의 말은 생각보다 나를 위로했다.
"누가 너한테 뭐라 그러면 똑같이 해줘! 가만히 있지 말고 널 지키란 말이야."
라는 말을 나에게 계속 하는 것 같았다.
그 날이 떠올랐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
응.
너는 오물오물 떡볶이를 마저 먹으며 대답했다.
"넌 너무 나약해."
맞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리지. 나도 너처럼 나를 저버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