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실망시킨 일들을 굳이 모두 나열하기는 귀찮다.
그렇지만 나는 많은 순간 너에게 실망했고, 적은 순간 너의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은 너도 지금껏 느껴온 진실이다.
너가 날 실망시킬수록 이 몸은 무거워졌고, 무기력해졌다.
아니 무기력한 몸이 너의 원래 몸이어서 내가 거기서 실망한 것이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꽤 많은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실망을 하였지만, 나는 너를 떠날 수 없었다.
너의 곁에 모든 시간 있으며 너의 모든 순간을 지켜봐야 했다.
그 순간에서도 너를 지키고 나와 함께 살아내게끔 해야 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이 나에겐 참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너는, 가끔 아니 자주 마음을 아파했다.
내가 본 바로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마음 아파하며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태어난 너였다면 왜 태어났을까.
너는 많이 아파했다. 나는 도울 방법을 몰랐다. 나는 그런 너를 처음 본 날엔 냉정하게 너의 위치를 말해줬고, 너는 자존심도 없는 듯 바로 수긍하며 나를 돕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고 너는 더욱 아파하며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고, 날 왜 자꾸만 실망만 시키내고 농성을 피우고 소리쳤다.
이럴 순 없다고, 너가 이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너는 더욱 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순간 너와 일평생 함께 해야 하는 내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나는 그 뒤에 어떻게든 너와 함께 나아가려고 하였다.
느끼지 못했을 수 있지만 너와 손을 잡고 나아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너는 너의 손을 나에게 쥐어주지 않았다. 손을 잡으려고 하면 너는 다시 손을 뺐다.
나의 실패인가.
나는 너를 위로 올려주려고 했다. 너가 여기에 있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아이들한테 기죽는 것 같아서. 그게 너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너가 더는 힘들지 않고,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않으며, 그래서 비로소 너의 상처가 아물고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너가 되도록이면 멋진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언제부터였을까. 너는 나를 무서워했고, 나를 피했고, 나에게 숨기는 것이 많아졌다.
우리는 숨기는 게 있어선 안 되는 사이이다.
왜, 왜. 도대체 왜. 내가 많이 봐줬잖아. 내가 널 위해 여기까지 와줬잖아.
나도, 나도 잘 하고 싶어. 나도 너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나도 잘 하고 싶단 말이야!
그 순간 한 외침이 들려왔다. 너에게 온 외침이었다. 너의 얼굴을 못 본 지 오래인데.
너는 멀리서, 뒤를 돌아 나에게 얼굴을 보였다. 눈물 범벅인 얼굴.
가엾다. 예쁜 얼굴, 다 망가졌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너가 다 자란 후에는 한 번도 다시 가져보지 못한 생각.
그렇구나,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는 어떤 날이 와도 너가 무엇을 하더라도 나에겐 예뻤다.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잘 되기를 빌었다.
그렇지만, 지금 너의 고통이 나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이건 나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모르겠다. 처음으로 답을 모르겠다.
너가 한심한 행동을 할 때면 언제나 미리 답을 말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편지를 부친다.
너와의 관계 회복을 바라며.
다시 나를 향해 활짝 웃어 주기를 바라며.
너는, 누구든 쉽게 용서하는 속 깊은 아이니까.
PS. 사실 네 웃음, 지적해야 할 마이너스 포인트가 아니라 나에겐 꽃과 같았다고 덧붙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