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인들은 이집트를 로마의 식민지나 그리스도교도들의 정착지쯤으로 알았다. 심지어 계몽시대조차 사람들은 이집트에 대하여는 피라미드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명이 그리스와 함께 시작된 줄 알았다. 출애굽이라는 단어만 들었을 것이다. 물론 동쪽 아시아에서는 이집트의 존재조차 몰랐다.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 그리고 수메르는 존재조차 몰랐다.
직접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고학에서는 농업을 국가 출현의 전제로 본다. 농업이 자리 잡으면서 식량이 남기 시작했고, 그 잉여가 사회 계층을 만들어냈으며, 이로 인해 국가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문자도 등장했다.
신석기시대에 인간의 정착촌들에서 농업이 시작되면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연합하여 왕국을 형성하는 변화는 세계적으로 최소한 여섯 곳에서 총 여섯 번에 걸쳐 일어났다. 주로 큰 강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이 출현했다. 기원전 35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3400년 이후 이집트, 기원전 2500년 이후 인더스 강 유역, 기원전 1800년 이후 중국의 황허 강 유역, 기원전 500년 이후 중앙아메리카, 기원전 300년 이후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동일한 패턴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어난 시기는 다르지만 동일한 고대문명의 발흥이었다. 이 같은 문명의 기원과 발전은 거의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일한 중심문화가 확산된 결과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앞선 문명 없이 최초로 발생한 문명이라는 의미에서 원초문명이라 불린다. 이들은 청동기와 농업, 문자와 도시 국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 오리엔트 아시아지역이다. 오늘날 문명의 발상지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2025년 기존의 역사지식을 뒤집는 연구가 나왔다. 농업에 의한 식량 생산이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등장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가 농업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국가가 먼저 등장했고, 그것이 농업과 언어의 발전을 촉발했다. 특정지역 사례가 아니라 언어 계통분석을 기반으로 전 세계 사회를 비교한 결과이다. 계층화된 사회 구조가 먼저 등장했고, 그 위에서 초기 국가가 형성되고, 이어서 농업이 정교해졌다. 국가가 등장하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필요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농경이 확대됐다. 초기 도시에서 권력구조의 형성속도에 비해 농업 발전이 늦게 따라오는 것도 설명된다. 문자도 국가 운영의 필요에서 먼저 등장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문자는 의사소통보다는 재산과 세금, 노동을 관리하기 위한 행정 도구로 먼저 기능했다. 국가가 생기고 행정 규모가 커지면서 기록수요가 커지면서 문자로 고도화됐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자 기록 상당수도 곡물 배분이나 세금 문서였다. 농업에서 문자와 국가로의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국가라는 정치적 틀의 등장과 사회적 필요가 기술과 경제 체계를 끌어올린 순환적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