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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 우주의 회전과 코페르니쿠스 원리



위성과 행성, 항성 그리고 은하는 회전한다. 회전하는 물체는 주변 시공간을 더 꼬집듯이 끌고 간다. 이것을 프레임 드래깅(frame dragging)이라고 한다. 이 효과는 쌍성의 펄사나 목성 곁을 스윙바이(swing-by)하는 탐사선들의 궤적에서도 확인된다. 우주가 회전하고 있다면, 프레임 드래깅 효과가 우주 전역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주의 모든 천체는 입자들이 중력에 의하여 모여들면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회전 반경은 더 작아지고 전체 각운동량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회전속도는 더 빨라진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각운동량을 미미하게나마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주의 각운동량이 0이 아니라면 모든 은하를 한쪽 방향으로 미미하게나마 회전하는 성분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주 전체가 회전하는지는 관측으로 검증하는 건 어렵다. 우리가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변 시공간과 함께 우리도 비슷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면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우주가 정말 돌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949년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은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으로 매질로 가득 찬 우주 전체가 회전하는 우주 모델을 만들었다. 우주는 투명한 유체 같은 매질로 가득 차 있다고 가정했다. 이 매질을 ‘먼지’라고 불렀다.


1983년 박사과정 학생이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북반구 하늘의 은하 108개를 분석했더니 전반적으로 한쪽 방향으로 치우친 패턴을 발견했다. 이를 근거로 우주 전체가 회전할 가능성을 제안했다. ‘우주의 회전(Rotation of the Universe)’이라는 거창한 제목이었다. 반응은 싸늘했다. 이후 제한된 데이터로 인한 통계오차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에는 수백만 개의 은하를 분석한 결과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나선 은하가 약간 더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재밌는 테스트를 했다. 은하의 이미지를 거울에 반사시키듯 뒤집어서 보여주고 어느 쪽으로 도는지 투표를 시켰다. 여전히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은하의 비율이 조금 더 높게 나왔다.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편향되었을 뿐이라는 결과를 보여주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필라멘트는 우주의 기본 골격에 해당하는 구조다. 수천만 광년에 걸친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은하와 암흑물질이 길게 연결된 우주 거미줄 같은 형태를 띤다. 은하들은 필라멘트를 따라 형성되며 가스와 물질을 끌어올린다.


2021년에는 거대구조의 필라멘트들도 한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필라멘트에 속한 은하의 절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절반은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필라멘트가 만들어질 때 태초에 미미하게 있던 각운동량이 보존되면서 그것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우주 전체가 회전하는지는 은하단 하나나 필라멘트 한두 개로는 판단할 수 없다.


2025년에는 5000만 광년 규모의 우주 필라멘트 내부에 있는 550만 광년 길이의 은하구조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관측됐다. 지구에서 약 1억400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은하 14개가 폭 11만7000광년의 얇은 띠 형태를 이루며 한 방향으로 일제히 회전하는 초거대 구조이다. 전체 구조는 하나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초속 약 110km로 회전하며 중심부 회전 반경은 약 50킬로파섹(kpc)(16만3천 광년)이다. 필라멘트 중심축 양쪽의 은하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포착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어캣(MeerKAT) 전파망원경의 심층 관측 자료와 미국 광학 장비인 암흑에너지 분광기(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DESI), 슬론 디지털 전천탐사(Sloan Digital Sky Survey, SDSS)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했다. 미어캣은 64개의 전파 안테나를 묶어 희미한 수소 신호까지 감지할 수 있는 장비다. 암흑에너지 분광기와 슬론 디지털 전천탐사는 은하의 위치와 거리를 정밀 측정한다.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44/4/4306/8363602


2025년 연구에 의하면 관측 가능한 263개의 은하 중에서 3분의 2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은하 263개는 우주 전체로 보면 너무나 적다. 게다가 특정한 방향을 관측한 데이터이다. 은하단 하나 안에서 은하들이 특정한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다. 우리 우주가 거대한 블랙홀 안에 갇혀 있다는 가설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블랙홀 우주론은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의 특이점에 대해 연구하던 때부터 제기되었다. 물리학적으로 블랙홀의 특이점과 빅뱅의 특이점은 다를 게 없다. 밀도가 무한이고 부피는 0이다. 또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하는데, 우주의 관측 가능한 지평선과 유사하다. 모든 블랙홀은 한쪽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한다. 우리 우주도 거대한 블랙홀 안에 갇혔다면 우주 전체가 한쪽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봐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번 발견이 블랙홀 우주론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우주의 질량만큼 무거운 블랙홀이 가질 수 있는 사건의 지평선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비슷하다. 우주의 지평선 크기와 우주의 회전 속도는 우주가 블랙홀 안에 갇힌 세계라고 가정하면 모든 설명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2025년 우주 전체가 회전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에 따라 가까운 우주와 먼 우주의 허블상수가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주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0억 년이다. 이런 속도라면 허블 텐션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속도는 회전하는 우주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빠른 한계 속도와 일치한다. 더 빠른 각속도로 회전하면 시공간이 엉키면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등 물리법칙이 무너진다.


코페르니쿠스 원리(Cosmological principle, Copernican principle)는 우주의 그 어떤 곳도 특별할 게 없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우주 전역에서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 크기와 비교해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에 걸쳐 은하 밀도가 더 높거나 낮게 분포하는 뚜렷한 초거대 구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우주 배경 복사 관측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우주의 절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모습이 확인된다. 수십억 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들도 발견됐다. 우주 끝자락에 퀘이사 여러 개가 길게 이어진 원시 필라멘트, 심지어 관측 가능한 우주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로 은하들이 길게 이어진 초거대 구조까지 발견했다. 우주가 거시적인 스케일에서는 균일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던 기존의 우주론적 원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초거대 구조는 기존의 표준 우주론 모델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에서는 재현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태초부터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향된 채로 시작되었을 가능성까지 고민한다. 따라서 이번 논문의 주장은 이러한 우주의 불균일성, 비등방성에 대한 의심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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