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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Sep 28. 2021

제주도에서 자가용의 의미

볼보와 쏘렝이

  전국에서 한 가정당 자가용 보유대수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제주도이다.

  전국에서 외제차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물론 제주도이다.      

  제주도에서는 한 가정당 기본 자동차를 두 대 이상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지하철이 없고 제주도심을 제외하고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렵다. 또한 택시를 타려 해도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가는 것은 시외에 해당되어 택시비가 매우 비싸고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제주도 20대 이상의 성인 대부분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땅의 크기에 비하여 인구가 많지 않기에 도심을 제외하고는 길이 거의 막히지 않는다. 운전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나는 원래 외제차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주관은 ‘차는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물건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의미가 없다.’ 였다. 하지만 제주도에 살며 자동차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2월 아내가 차를 바꾸었다. 아내는 나보다 더 자동차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물려주신 15년된 로체를 타고 다닌 아내이니 얼마나 차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새 차로 사.”
   나는 아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가 H사의 아반떼나 K사의 K5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자만했다. 그런데 아내가 보는 차들이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차들이었다. 

  “차는 한 번 사면 바꾸기 힘들잖아. 살 때 좋은 거 사야지.”
   아내는 K9, 제네시스를 보더니 견적을 내보고, 급기야는 수입차로 시선을 돌렸다. 요즘 국산차 가격은 수입차와 맞먹는다. 

  “국산차 못 사서 외제차 사는 거야.”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다. 지프에서 시작한 수입차 브랜드는 폭스바겐으로, 볼보로, 아우디로, BMW로 옮겨갔다. 

  ‘아, 이래서 마티즈 사러 갔다가 그랜저 뽑고 나온다고 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천만 원만 더 보태면, 오백만 원만 더 보태면 하다가 차의 레벨은 끝없이 올라갔다. 아내는 결국 볼보차를 계약했다. 

  ‘너무 무리한 것 아니야?’

  처음에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수입차에 대하여 내심 로망이 있던 나도 이 기회에 한 번 수입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한 요즘 잘 나가는 볼보의 멋진 디자인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아내와 내가 한눈에 반한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

  그래서 볼보를 샀냐고? 아니다. 아내는 지금 국산차를 타고 있다. 볼보의 단점이 대기기간이 6개월 걸린다는 것이다. 아내가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차는 소모품인데, 내가 미쳤었나봐.”
   아내는 이 말을 하고는 매장에 전화를 해서 계약금을 돌려받고, K사로 가서 쏘렌토를 뽑았다.

  “제주도는 눈이 오면 차가 다니기 힘드니까 사륜이어야 하고, 환경도 생각해야 하니까 하이브리드여야 해. 차박도 해야 하니까 RV로 할 거야.”

  아내는 참 현실적인 사람이다. 아내는 지금 이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충족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아내의 바람을 모두 충족한 K사의 쏘렌토

  제주살이에서 자가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동네 마트를 가도 자동차를 끌고 가야 하기에 자동차는 내 몸과 같다. 서울에 살 때 승차감만 중요시하던 내가 요즘은 하차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동차에서 내렸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 그것은 과시가 아니라 자기만족이다.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갈 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제주도에 살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듯이 자동차를 탄다.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학교에 외제차를 끌고 오는 동료 선생님이 있으면 

  ‘국가공무원이 어떻게 외제차를 끌고 다닐 수 있어?’

하며 교사들끼리 모여 비판했었다. 제주도 초등학교 교직원 주차장에 가면 외제차가 흔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참 신기했다. 

  ‘제주도 교사들은 참 잘사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농사를 짓는 농부도 일을 할 때는 트럭을 타지만 외출할 때는 벤츠를 타고 간다. 예전에 성산에 살 때 자주 가던 작은 편의점이 있었는데, 편의점 주인 아주머니가 영국차 랜드로버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던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주민들이 가장 가난해요.”

  기본적으로 땅이 몇백 평씩 있는 제주도민들을 볼 때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제주도에서는 남이 어떤 차를 타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기호의 차이일 뿐이다. 제주도민에게 자동차는 그냥 너도 있고, 나도 있는 생활의 필수품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사람이 비싼 수입차를 타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작은 경차를 타든, 커다란 수입차를 타든 그것은 단지 개인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기에 상관하지 않는다. 

  비록 볼보차는 사지 못했지만 만족해하며 자동차와 함께 출퇴근하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다니는 아내를 보며 자동차를 사준 보람을 느낀다. 

  “여보, 요즘은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비싼 외제차 타고 가정법원이나 들락거리는 사람들, 우리는 국산차 타지만 이 차 타고 제주도 멋진 풍경을 보러 다니잖아. 우리 정말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아내 말이 맞다. 자가용을 타고 스트레스 지수가 정점을 찍는 강변북로와 서부간선도로를 운전할 일이 없고, 해안도로와 비자림로, 금백조로를 운전하는 아내와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바다와 오름, 억새를 보며 운전을 하니 눈이 즐겁고 일상이 여행이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쏘렝이와 카렝이를 타고 제주도 어디를 갈지 고민해 봐야겠다. 우리 가족은  쏘렝이, 카렝이와 함께 제주도에 산다.     

출근도 하고 차박도 하는 우리집 자동차 쏘렝이와 카렝이. 세상 어느 차도 부럽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출간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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