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자세로 세상을 걷는 법
2026년은 60 갑자로 병오(丙午) 해다. 불과 불이 포개지는 해, 뜨거움과 에너지가 상승하는 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년의 키워드를 '겸허'로 정한 것이 어쩌면 신의 한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광휘(光煇, 눈부시게 빛남)를 앞두고 마음을 낮추어야 균형을 찾는 것처럼, 불이 두 번 겹치는 해를 살아내기 위해서야말로 더 깊이 낮아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때가 많았다.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듣는 것보다 말하는 쪽이 편해지곤 한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결책을 떠올리고, 누가 의견을 말하면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또 글을 쓰며 내면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사람은 말할 때보다 들을 때 더 많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생각이 옳아요"라는 문장의 힘
요즘 어떤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 바로 "당신 생각이 옳아요."
이 말은 상대의 판단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이해한다'는 뜻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살아온 길, 마음의 상처, 배운 방식, 그리고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들이 얽혀 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조금씩 자기 안을 정리하고, 다음 말을 더 깊이 꺼낼 수 있게 된다. 경청이란 결국 그 문장을 마음으로 전하는 과정이 아닐까.
경청은 쉬운 기술이 아니다
나는 한동안 경청을 단순한 '예의' 정도로 여겨왔다.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 '기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곧 깨닫는다.
누군가 내게 고민을 말할 때, 나는 종종 마음속에서 자동으로 답을 골라 들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저 방향이 더 나을 텐데. 머릿속에서 이미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경청의 가장 큰 적은 '내 생각이 너무 선명할 때'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내 판단이 또렷하면 들리지 않는다. 내 경험이 단단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말들은, 타인의 속내들은 때로는 작은 바람처럼 들어와 부딪힐 틈을 필요로 한다.
경청의 핵심은 결국 여백을 만드는 것이다. 내 의견을 내려놓을 작은 공간, 상대의 말이 머물 수 있는 조용한 방, 그 방을 잠시 비워두는 마음이다. 그 여백이 없다면 우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의 외곽을 견고하게 지키는 것에 불과하다.
겸허함은 경청의 또 다른 이름
나는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이면 '겸허'라는 단어를 자주 떠 올린다. 겸허는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태도가 아니다. 세상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에게 옳은 것은 아님을 아는 자세다. 내가 살아낸 방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인정을 기반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불이 겹치는 병오년에 '겸허'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뜨거운 시기일수록 더 낮아져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 흔들릴 때가 많은 법이다. 그럴 때 필요한 건 큰 결심이나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조용한 자세일지 모른다.
경청은 겸허함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다.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는 일은 그 사람에게 향하는 존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다시 듣는 법을 배우다
마른 낙엽 길을 걸을 때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에서 '겸허'를 생각한다. 새소리를 듣고, 길 위의 바람 소리를 듣고, 마음이 내는 작은 떨림을 듣는다. 누군가의 말뿐 아니라, 세상의 작은 움직임들을 듣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안의 소음이 조금씩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말보다 듣는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깊게 깨닫는다. 경청은 문장을 얻게 해주는 씨앗 같다. 사람들의 말, 세상의 소리, 마음속의 울림이 모두 글이 될 재료가 된다. 내가 겸허해질 때 글도 자연스럽게 고요하고 단단해진다.
2026년을 앞두고 나는 다시 다심한다.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속에 담긴 세계를 먼저 보겠다고. 불의 해를 겸허함으로 살아내기 위해, 나는 '듣는 사람'으로서 한 해를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생각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 생각이 옳아요.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길 위에서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