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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수 Jan 09. 2022

무엇이 나의 주인인가?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임제선사(臨濟禪師)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말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머무는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 삶의 참다운 주인이 되면, 그가 머무는 곳은 진리의 세계, 행복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기 삶의 주인이다. 실제로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도 내가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의존하게 되면,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배하는 내 삶의 주인이 된다.





어느 중견기업 사장님에게 ‘엄친딸’이라 불릴 만한 훌륭한 딸이 있었다고 한다. 외모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데다가, 공부면 공부, 음악이면 음악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남녀공학인 중학교에서 여학생이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도 출중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부모인들 그런 자식이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그 사장님은 ‘딸 때문에 산다’고 할 만큼 완전히 ‘딸 바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딸은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하러 갔다가 백화점이 붕괴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딸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둘째인 아들은 쇼핑에 동행하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금지옥엽처럼 아끼던 딸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결국 그 사장님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폐인처럼 되어 버렸다. 늘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회사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버린 ‘딸에 대한 애착’이 그를 상실감의 늪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를 찾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있다. 휴렛팩커드의 그레그 머튼 부사장도 사랑하던 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마음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슬픔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자기 삶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바꾸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자신에게 가장 ‘큰 비극이자 은총’이라고 말한다.


“당시 나는 대화, 즉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법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사색과 예리한 통찰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차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슬픔에 지배되는 대신, 자기를 성찰하고 보다 큰 삶의 의미와 목표를 위해 살게 된 것이다.



머튼 부사장은 경쟁을 멈추고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조직을 이끄는 데 응용했다. 그의 새로운 비즈니스 원칙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변화시켰고, 직원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머튼과 그의 팀이 자각과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휴렛팩커드는 크게 성장했고, 사업영역도 한 개에서 여섯 개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레그 머튼 부사장은 자녀에 대한 애착과 미련 대신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비즈니스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주인이 이끌고 지시하는 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덕분에 그는 새롭게 선택한 주인이 주는 더 큰 기쁨과 보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당신의 주인인가? 당신이 그것을 인식하든 못하든, 이미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 있다. 그것은 당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무엇을 당신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돈을 주인으로 모신다면, 돈이 생길 때 행복하고 돈을 잃을 때 불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예를 주인으로 모신다면, 명예로운 일이 생길 때 행복할 것이고 명예가 실추될 때 불행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돈이나 명예를 잃을까 늘 염려하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현실적인 조건에 구애되지 않는 ‘완전한 행복’을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 이 행복은 물질처럼 무엇을 얻거나 잃었다고 해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본래 존재하는 한없는 사랑과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적인 나’ 혹은 ‘참다운 나’로서의 삶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는 것은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주인으로 삼지 말고, 이 ‘참다운 나’를 주인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참다운 나’는 눈에 보이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행복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나'를 주인으로 모신 사람, 다시 말해서, ‘참나’로 사는 이는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에 늘 존재하는 행복을 누리는 그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늘 행복만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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