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테이스팅 용어 중 미네랄 혹은 미네랄리티라는 것이 있다. 십수 년 전 와인을 처음 배워나갈 당시만 해도 그다지 많이 사용되던 용어는 아니었다. 사실 식품 과학을 전공한 이로서 와인에서 미네랄 향과 맛이 난다는 표현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철분도 미네랄이요, 나트륨도 미네랄이요, 칼슘도 미네랄이다. 영양소 혹은 무기 광물질으로서 당장 생각나는 미네랄 종류만 열 손가락을 꼽는데 그걸 어떻게 '미네랄 맛' 혹은 '미네랄 향'이라고 퉁쳐서 표현할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미네랄에 향미가 있다고 쳐도 마그네슘과 칼륨, 아연 등의 각 미네랄 성분들은 다 다른 맛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랜 시간 접하다 보면 받아들이게 되는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와인 용어로서의 미네랄을 물어본다면 역시나 두리뭉실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와인 전문가들도 하는 얘기가 조금씩 다르다.
와인의 미네랄에 대해 한동안 받아들여진 설은 다음과 같다. 독일 리슬링 포도밭의 점판암이나 프랑스 샤블리 포도밭의 석회암처럼 포도밭에 있는 암석, 즉 미네랄(무기물질) 돌덩이의 영향으로 와인에서도 미네랄 풍미가 느껴진다는 것. 지질학적 미네랄이 영양학적 미네랄로 옮겨왔다는 해석으로, '떼루아'를 중시하는 와인 전문가 사이에서 주장되어온 관점이다. 이는 샤블리 지역의 키메리지앙(Kimmeridgian) 토양에 굴껍데기 화석이 있기 때문에 샤블리 와인과 굴이 잘 어울린다는 마리아주가 각광받아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많은 전문가가 얘기하기론 암석의 미네랄 성분은 포도나무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토양의 수분에 용해되어 있는 미네랄 이온은 흡수될 수도 있고, 그 미네랄 이온이 암석에서 분해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그보다 식물이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미네랄은 토양 내 미생물 대사의 결과물인 유기물 휴머스(Humus)에 의한 것이라는 학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내가 와인을 시음할 때 사용하는 '미네랄'이란 단어의 본질은 무엇일까? 산미를 미네랄로 착각하거나 뇌에서 지어낸 감각일 뿐일까? 아니면 레몬, 바닐라 등 와인 테이스팅 용어의 대부분을 '묘사'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서 유독 '미네랄'만 실제 와인에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혼란이 온 건 아닐까?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후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과학의 영역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소비자나 테이스터는 미네랄을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포도밭의 암석의 영향이든 미생물의 영향이든 양조과정의 영향이든 그 무엇의 영향이든 간에.
그럼 와인 시음 용어로서 미네랄이란 단어는 언제 사용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와인의 미네랄, 그 첫 번째 감각은 분필가루나 조개껍데기와 같은 석회질, 혹은 부싯돌의 뉘앙스이다. 샤블리 와인이나 샴페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두 번째 감각은 감칠맛을 동반한 짭조름한 맛이다. 때로는 맛이 아니라 해안가의 소금기 머금은 향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미네랄 혹은 미네랄리티, 20년 후에도 계속 사용될 시음 용어인지는 모르겠다. 와인 전문가들도 여전히 와인을 설명할 때 포도밭의 암석과 와인의 맛에 대한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확고한 개념이 정립되어 뿌리내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지 100%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유지하며 다른 관점도 받아들일 유연함이 필요한 카테고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