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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로, 나를 살기 위해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를 읽고

by Chloe J

성찰도, 반성도 할 만큼 했다. 저절로 드는 마음을 고쳐 먹으려 노력하고, 이해하려 애썼다. 대화를 시도하고, 눈물로 호소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복잡한 감정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더 읽고 싶지도 않았다. 내면아이에 대한 책을 읽을 만큼 읽어봤지만, 그 안에 해법은 없었다. 내 문제에서 시작되어 찾게 된 대부분의 심리학은 과거에 대한 폭로 이상의 답을 주지 못했다. 내가 왜 마음이 아픈지 이해하면 할수록 원인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해결되지 못했다. 그냥 나는 적절한 상황에서 자라지 못한, 못난 아이일 뿐이었다.


차라리 모를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부모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해결되지 않았고, 어린 나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불쌍한 아이인 동시에, 그렇게 자란 나는 가정폭력을 대물림할 가능성이 큰 가해자였다. 그런 적은 없었음에도 가해자라는 죄책감만 자리 잡았다. 아이를 대하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서적 학대가 아닐까 지나치게 예민하게 자책했다.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덮었다.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려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려 했던 모든 노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했던 모든 생각이 책 한 페이지에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는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부모님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 정도 자란 것도 다 부모님 덕이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감정의 방아쇠가 당겨질 때마다 터져 나왔다. 터진 감정은 혼자 삼켜야 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부모에게는 여전히 좋은 딸이어야 했다. 딸과 남편에게 이런 감정이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기를 쓰고 똑바로 앉아 버텼다.


겉으로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시간적·정서적 에너지를 제한하며 마음의 동요를 줄였고, 그렇게 나의 가족과의 화목을 찾아왔다. 나는 혼자 노력하고 분투해서 지금에 이른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결혼은 불완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인간에게 주어진 두 번째 애착의 기회다.


테두리가 보이지 않는 넓은 울타리 같은 시아버지를 닮은 남편 덕분에, 나는 자라면서 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받고 있다. 이제는 많이 안정되었고, 한 발 떨어져 내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를 읽으며 나를 바로 잡아주고 있는 한사람과 문제 해결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1. 자기 이해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불안이 많기 때문에, 불안과 화남조차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충돌하지 않는 일상을 살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나보다 남에게 맞추기에 바빴다. 이제는 이런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가는 중이다. 감정에 더 솔직해져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2. 용서
내 감정을 무시하고 부모를 먼저 이해하려 했던 나를 돌아봤다. 그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이제는 나라도 정당하게 받아주기로 했다. 불완전한 공감 능력이 없는 부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를 위해 화해가 아닌 용서를 하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강요받았고, 부정적인 마음을 품는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다. 물리적 거리 두기에도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 자기 사랑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흔하게 들어 무감각해질 정도다. 그러나 사랑의 실체를 ‘성장’으로 규정한 순간, 그 의미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습성이라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힘들지만 타인과의 비교를 그만두기로 했고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적어보며 자각했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는 성장. 이를 통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어떤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 문제는 더 그렇다. 때로는 해결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 된다. 또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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