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같은 메시지를 받는 순간이 있다. 내게 뉴욕이 그랬다. 그전까지 한 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 뉴욕. 그런데 어느 순간, 우연과 운명 그 중간쯤에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많이 읽는 만큼 잘 잊어버리는 나지만, 유독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책이 있다. 유지혜 작가의 우정 도둑. 2년 전쯤 읽었던 그 책 속에 뉴욕이 등장했다. 젊은 나이에 홀로 훌쩍 떠나는 여행, 대부분의 사람 눈에는 대단해 보이겠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일상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질투가 났다. 거리낌 없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언어까지. 부러웠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나 홀로 뉴욕 한복판에 서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생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이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첫 번째 대학에 들어가 3학년부터 의대 편입을 준비했고, 공과대학에서 의과대학, 그리고 인턴까지 이어지는 학업의 터널을 지나 결혼을 했다. 결혼 후 1년 만에 아이를 낳았으니 쉼도, 다른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전까지는 돈이 없었고, 결혼 후에는 시간이 없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 연차 5일이 전부였던 첫 직장의 근로 조건. 그 조건 속에서 5년을 버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도 견뎠다. 전공의를 그만두고 낮아진 자존감 속에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버텼던 시간이었다. 내 일상에 예외란 없었다.
유튜브나 책에서 여행을 다니며 사는 삶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없었다. 나는 원래 이벤트 상황을 즐기지 않았다. 연애 시절, 남편이 챙겨준 기념일 서프라이즈에 화를 내며 초를 칠 정도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 계획되지 않은 상황을 불안해하고 싫어했다. 여행이란 우연과 사고, 그리고 당황스러움을 기꺼이 맞이하는 일이기에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일상의 쳇바퀴가 편하다고 믿었던 나였으니까. 그런데도 여행이 내 삶에 들어왔다. 이유는 딸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닐 수 없는 아빠, 여행을 즐기지 않는 엄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는 딸에게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일상의 쳇바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의 여행들은 쉽고 간단했다. 갈 수 있는 날짜를 고려해 대륙을 정하고, 몇 안 되는 패키지 중 조건에 맞는 곳을 선택하면 끝. 여행에 대한 열망이 없었기 때문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책과 여행의 공통점, 어쩌면 다른 모든 새로움의 공통점을 찾았다. 책은 책을 이어준다.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발견하고, 같은 작가의 책을 궁금해하며, 연관된 책을 찾아 읽는다. 여행도 그랬다. 처음에는 의미도 의도도 없이 시작됐지만, 여행은 다음 여행을 이어줬다. 그리고 이번도 그랬다.
작년 프랑스 여행.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그림 앞에 두근거림을 느꼈을 때, 나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이 아름다워질수록,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갔다. 이후로도 뉴욕은 내 삶 곳곳에 등장했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왜 위대한지 도무지 모르겠던 위대한 개츠비. 그 책을 독서 모임에서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을 독자에게 준다. 이번에 다시 읽은 개츠비는 뉴욕을 품고 있었다. 뉴욕이 좋아서 개츠비가 좋아지는 건지, 개츠비가 좋아 뉴욕에 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내게 뉴욕은 막연한 꿈, 가봤으면 좋겠다는 환상이었다. 하지만 딸에게 뉴욕은 가봐야 할 곳이었다. 사람은 보통 ‘아는 것’을 열망한다. 모르는 것을 꿈꾸기는 힘들다. 그런데 만 13살이 되는 내 딸의 꿈은 단 한 번도 간접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직업이었다.
외교관. 나는 외교관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딸의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라면, 부모로서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이 5학년 때 어렵게 신청한 어린이 외교관 학교에서 외교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달 동안 배울 수 있었다. 외교부에서 진행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외부에 상시 공개되는 게 아닌 외교관 그들만의 공간이 주는 부푼 꿈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한 번에 4시간의 교육을 받아내는 딸의 모습이 신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인 내가 봐도 그리 재미있는 수업은 아니었다. 의도 자체가 직업 체험 놀이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달랐다. 각 잡고 역사와 이론을 배우고, 발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태도에 놀랐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면, 어떻게 이런 꿈을 꾸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어릴 때 품었던 장래 희망은 단지 상상과 이미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의 열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또 다른 경험을 더해 꿈을 키워간다. 그리고 내 아이도 그런 환경 속에 속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현재 나는 국공립 건강검진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12월과 가장 한가한 1월. 그래서 1월에 휴가를 떠난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대신 2배의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 나와 직원 모두에게 최적의 휴가 일정이 1월이었다. 그래서 늘 1, 2월이면 열흘 정도의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우리 여행은 늘 겨울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춥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2024년 1월, 프랑스와 영국 패키지여행. 딸과 함께 여행지에서 본 회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화제에 올랐다. 며칠 뒤, 딸은 국제연합 본부가 뉴욕에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의 희망과 딸의 꿈으로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3월, 뉴욕을 향한 10개월간의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은 준비부터가 여행이다. 뉴욕이라는 새로운 페이지가 그렇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