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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목표가 필요해?

by Chloe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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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길 계획형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계획형 인간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즐기려면 여백이 필요한데, 걱정도 많은 계획형 인간인 나는 스스로 세운 계획의 촘촘함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여행에서만큼은 계획을 덜어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국내 여행에서는 항공권이나 기차표만 예약하고, 일정은 정하지 않은 채 떠나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계획을 덜어낸 자리에 목표를 심는 것이 내 여행 방식이 되었다. 어쩌면 패키지여행을 주로 떠나는 나로서는 단순히 돈을 쓰는 관광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나름의 의미 부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여행의 목표는 회화 작품의 취향을 넓히는 것이었다. 이제 막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한 나는 그에 이끌려 프랑스와 영국을 선택했고, 패키지여행 속 자유 일정을 루브르와 오르세로 채웠다.


이번 여행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구상에 들어갔다. 뉴욕 여행은 딸의 꿈인 외교관, 그리고 국제연합 방문에서 시작되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넘쳤지만,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의 미션이 좋아하는 일도 하기 싫게 만드는 마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네 살 때 영어를 거부했던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 원대한 꿈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목표는 스몰토크였다. 나는 아줌마가 된 지 오래지만, 길에서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친근함을 표현하는 ‘아줌마의 기술’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뉴욕에서 스몰토크를 해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중요한 도전이 되었다.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익명의 힘이 나를 도와줄 거라 믿었다.


다음 목표는 자유여행이기에 가능한 우연의 운명적인 이끌림을 따라 우리의 스케줄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계획표는 허술했고, 빈 공간이 많았다.


1월 15일 : 공항 도착, 숙소 체크인 (오전에 도착했지만, 구체적인 일정 없음)

1월 16일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도슨트(오전 10시), 뮤지컬 라이온 킹(오후 7시)

1월 17일 :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도슨트(오전 11시), 자연사 박물관(오후 4시 예정)

1월 18일 : 뉴욕 시티 버스 투어(오전 9시), 911 메모리얼 뮤지엄 방문

1월 19일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리골레토(오후 3시)

1월 20일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친구와 만남 (나는 친구를 만나고, 딸은 미술관 관람)

1월 21일 : 국제연합 도슨트(오전 10시), 휘트니 미술관(오후)

1월 22일 :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보엠(오후 8시)

1월 23일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탐방

1월 24일 : 노이에 갤러리(오전), ONE PICK 미술관

1월 25일 : 귀국


지금 다시 봐도 지루할 만큼 미술관이 많다. ‘내가 이렇게 미술을 좋아했었나? 재미없으면 어쩌지?’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어떻게 다니며 무엇을 먹고살지는 철저히 뉴욕에 떨어진 나에게 모두 떠넘긴 계획이었다. 일정이 간단하고 빈 시간이 많아서 휘트니 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곳을 다녀오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내가 꽤 쿨하고 도전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처음 계획해 본 자유여행은 비행기 탑승까지, 이제는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처해서야 불안을 접을 수 있었다. 자유여행을 가본 적 없는, 어설픈 우연적 운명을 믿는 나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생한 리얼의 막막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술관을 다니는 것 외에도 나만의 작은 목표가 하나 더 있었다. GE(제너럴 일렉트릭) 빌딩 앞에서 사진 찍기. 나는 GE의 개미 주주다. 주주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뉴욕까지 갔는데 록펠러 센터에 있는 ‘내? 회사’에서 기념사진 한 장쯤은 남겨야 했다. 투자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6년 정도 운명을 함께하고 있으며, 주식을 팔지 않고도 두 번이나 세금을 내게 만든 회사다. 세금은 번 것이 있어서 내는 것이니 감사한 회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표.


‘올해도 소정이와 둘만의 시간을 열흘이나 가지는구나!’

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갑자기 죽음을 앞둔 것도 아닌데 주마등처럼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한때는 제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바랐다. 엄마를 가만두지 않던 아이였다. 화장실에도 안고 들어가야 했고, 밥도 안고 먹어야 했다. 가족 행사에서 외식을 해도 제대로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유모차, 카시트, 소서 등 앉으라고 나온 모든 제품은 거부했고, 엄마의 왼팔과 귀 없이는(이건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밤 10시에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엄마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싶어 하며 나와 실랑이를 벌인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한 발씩 엄마로부터 독립해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육아의 완성은 독립인데,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공부의 동력 중 하나는 아이를 잘 보내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데 있다.


잃어야 소중함을 안다지만,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찾아오는 이런 매듭을 통해서야 비로소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0년 전만 해도 1년 365일을 함께했다. 한 몸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와 단둘이 함께할 시간이 1년에 10일씩 10년을 채운다고 해도 100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후려쳤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딸과의 시간 채우기가 되었다.

나는 불안함에 성질을 부리지 않고, 이 시간을 잘 채워갈 수 있을까.

뉴욕에서 딸과 함께하는 시간, 그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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