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도서구입비로 십만 원을 정해놓았다.
처음 인터넷으로 책을 사기 시작했을 때는 오만 원이면 다섯 권, 혹은 여섯 권이 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육만 원인데도 네 권을 겨우 담을 수 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엄청난 독서광은 아니다.
처음 책을 사는 재미가 들었을 때는 지금 다 못읽더라도 이다음에 K퇴직하고 책을 사기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서 미리 사 놓는다는 어설픈 명분이 있었다.
하여 네 권 사면 두 권정도 읽고 두 권은 새 책인 채로 책꽂이에 꽂아두었더니 책장이 비좁아지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 전 집으로 이사를 할 때에는 확장한 베란다까지 약 사 미터쯤 되는 거실 양쪽 벽면을
캔넬 선반을 달아 책을 꽂기로 했다.
선반 자재를 주문해놓고 확인차 책을 꽂아도 괜찮을지 물었더니 당연히 괜찮을 거라는 대답대신 판매자에게서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책은 얇은 책 한 권이나 두 권 정도고요 그냥 장식품정도 올리시는 용도예요. 책을 빽빽하게 꽂으면 무너질 수도 있어요.”
주문한 자재가 이미 도착해 있었으니 그 양이며 무게로 봐서는 교환 반품을 하는건 아무래도 불가능하지 싶었다.
이삿짐을 들이던 날, 인테리어 업체에서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프레임 위에 나무 선반을 고정시키느라 식구가 총 동원했었다.
각자 방에 있던 책들까지 모두 거실 선반에 꽂았더니 거실이 책벽같기도 하고 책터널처럼도 보였다.
뿌듯함도 잠시 선반사장님의 말이 떠올라 긴장이 됐다.
이듬해 여름, 에어컨이 거실에만 있었으므로 K2와 거실에 이불을 펴고 자기로 했다.
시원해서 잠이 들려는 순간, 다시 선반사장님 말이 떠올라서 눈이 번쩍 떠 졌다.
“무너질 수도 있어요요요요~.”
그 곳에서 만 사년을 사는 동안 책벽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아파트 평 수가 줄어 이 곳으로 이사올 때 눈물을 머금고 거의 한쪽 벽면 양만큼의 책을 줄였다.
K는 이미 퇴직을 했지만 나의 책사기는 멈추지 않았다. 전 만큼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책을 주문한다. 서점 택배박스만 보면
“또 샀어?”
하던 K의 불만섞인 잔소리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우울증 때문에 그런다, 명품을 사들이는 것보다 낫지 않냐, 나는 e북보다 종이책이 좋더라 등등 갖가지 명분을 쥐어짜보지만 꽂을 자리가 없어 말도 안되는 가격에 중고책방에 되팔기까지 하면서도 책을 사는 일에 죄책감이 없을 수가 없다.
이제 정말 책은 그만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구입한 책은 분류 해서 소설은 작가순, 비소설은 제목순으로 목록을 만들었다.
새로 구입한 책을 목록에 기입을 하려는데 작가의 이름을 찾고 보니 이미 같은 제목의 책이 목록에 있었던 거다.
집에는 나 혼자 있었는데도 창피해서 본능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 것이다.
며칠 전에 유투브로 모 작가의 토론 영상을 봤다. 알고리즘을 따라 두세 편을 이어서 보고있는데 그의 작가 된 얘기, 작가로 사는 얘기, 그리고 독서 습관 등 다양한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인세로만 생활이 되는 소설가는 몇 안 된다는데 저 사람은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귀에 쏙 들어오는 얘기가 있었다.
“샀던 책을 또 살 때도 있어요. 있는 줄 몰라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사기도 해요.”
‘어머나 세상에,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러고보니 어느 중고서점에 갔을 때 이층 벽면에 높이 걸려있던 문구가 생각이 났다.
- 굿즈 때문에 책을 산 적이 있다
샀던 책을 또 산 적이 있다.
표지가 예뻐서 책을 산 적이 있다....
등등 한 열 가지 쯤 되는 항목이 있었는데, 책을 고르다 말고 한동안 맞아 맞아 내말이, 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고를 때 기분이 좋다.
사는 일도 책 고르듯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요즘은
‘저 책들을 다 어쩌냐...’
싶은 마음이 들어 멍하니 책등을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