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그랬는지 속이 불편해서 그렇게 된 건지 짬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K와 중국식당에 가면 나는 자장면을 그는 늘 짬뽕을 시킨다.
자기 짬뽕 한 그릇을 다 먹고 반쯤 남은 내 자장면도 마저 먹는다.
결국 K는 한 번에 짬뽕도 먹고 자장면도 먹는 셈이다.
그렇다고 K가 자장면을 시키면 내가 짬뽕을 시킬 거냐 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십 년 쯤 전엔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추천으로 한림에 있는 중식당에 간 적이 있다.
사장님이 추천한 이유는 그 집이 짬뽕 맛집이라서였는데 나는 자장면을 먹었다.
그랬었다는 얘기를 하며 그 다음해에는 K와 함께 그 식당에 다시 갔다.
언제나 그랬든 그는 짬뽕을, 나는 자장면을 시켰다.
그런데 짬뽕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눈길을 뗄 수 없을만큼 짬뽕의 비주얼은 엄청났다.
층층이 쌓인 홍합과 뿔소라등 해산물이 그득해서 면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K고객님은 그 날 그야말로 매우 흡족한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는 몇 해만엔가 그 식당에 다시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바뀐 건지 주방장 마음이 변한 건지 짬뽕이 그 때 그 짬뽕이 아니었다.
첫 기억이라 조금 과장됐다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그 것은 우리 동네 어느 중국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모양이었다.
이 후로 제주에 가더라도 그 식당에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재작년에 한달 살이를 왔을 때 K의 현지인 친구가 추천한 중국집에 간 적이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숙소 근처에 유명한 중식당이 두 곳 있는데
한 집은 돈을 많이 벌어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했고
다른 집은 여전이 노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은 웬지 느낌상 원조의 냄새가 풍기는 노포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K는 한 발 더 나아가 오래전 그 짬뽕을 기대 했을지도 모르겠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길 가에 차를 세워야 했고 번호표는 일일이 펜으로 종이에 적은 숫자를 나눠 주는 것부터 어쩐지 프로의 냄새가 뿜뿜 풍겼다.
다행히 대기는 그리 많지 않아 금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의 시그니처는 고기짬뽕이라고 했다.
제주도가 해산물도 많지만 흑돼지도 유명하니 그런가보다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K는 도무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거기서도 나는 자장면을 먹기는 했지만 한 숟가락 얻어먹어본 국물맛은 구수하고 깊이가 있으며 그리 맵지 않아서 괜찮았다.
작년 여름, 갑작스런 갑상선 항진증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K는
무척 힘이 들었는지 스스로 음식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 중 밀가루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국수는 늘 직접 삶는데 보통 남들 일 인분 양의 세 배 정도를 먹었으며
짬뽕을 비롯한 모든 면 요리를 즐겼다.
연예계에 김종면이 있다면 우리집에는 김승면이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근래 들어 배달로든 식당이든 중국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나는 일본어 수업을, K는 탁구 수업을 마치고 밖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재 오픈을 한 집근처 중식당이 궁금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고 싶기도 해서 그 식당으로 갔다.
당연히 짬뽕을 시킬 줄 알았는데 그 날 나는 자장면, K는 볶음밥을 시켰다.
“이제 짬뽕 안 좋아해?”
“제주도 그 짬뽕집에서 실망하고 부터는 그냥 그렇더라고.”
짬뽕이 싫어진 건지 그들의 상술에 실망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짬뽕을 먹지 않는 K의 모습은 조금 낯설다.
이왕이면 상술에 실망을 한 거라면 좋겠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열 장 들었던 김을 아홉장만 넣었다든가
가격도 올랐는데 아이스크림의 크기까지 쪼꼬미가 되었다든가
그런 일은 빈정은 상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가리고 피할 음식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은 어쩐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