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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Nov 22. 2024

맘마미아를 봤어야 했나봐.

영국 런던



여행을 다닐 때에는 ‘여기까지 왔으니’ 하는 마음이 배짱을 키우는 것 같다.

일테면, 아직 한강 유람선도 타 본적 없으면서 여행을 하면서는

세느강, 다뉴브강, 포루토에서 도우강 심지어 모스크바강에서도 유람선을 탔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남산타워에는 마흔 살이 넘어 경기도에 살 때 처음 올라가 봤다.

63빌딩 수족관은 생겼다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 본 적 없고

자연농원이었다가 에버랜드가 된 그 곳에도 못가봤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도대체 연애 할 때 데이트는 어디서 한 거야?”


라고 묻는다. 

기억을 쥐어 짜내보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기는 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어느 무렵부터인가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 시작했지만

연극은 아주 가끔 한 번 봤고 뮤지컬은 초대권이 있는 경우 말고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여 맘마미아는 극장에서 영화로 처음 봤었다.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뉴욕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아이들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은 봐 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실상 티켓 검색은 아이들이 했고 비용은 K가 냈으니 티켓값이 얼마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왕이면 라이언킹을 보고 싶었는데 그건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라이언킹은 당연히 아이들 취향이기는 했지만 나도 언젠가 한 연극배우가 말했던

놀랍고 경이로운 무대장치에 한동안 넋이 나갔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어 궁금하기도 했다.

라이언킹을 포기하고 급하게 구한 티켓이 맘마미아였다.

아무래도 영어로 하는 대사를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을테니 그나마 익숙한 아바 음악이 좋지 않겠냐면서.

맘마미아 공연이 훌륭했다기 보다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이라는 도장을 깨고

보스턴에서는 전망대에 입장료까지 내고 올라갔었다.

그리고 지난 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K가 불쑥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했는데 그게 또 맘마미아였다. 

한국어로 하는 공연은 어떨지 궁금하다며.

그래서 였을까? 런던에서 꼭 봐야한다는 뮤지컬은 고민도 없이 라이언킹으로 예약했었다.

역시나 ‘언제 또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겠냐.’며 이왕이면 좋은(즉, 비싼) 좌석으로. 


입장권 바우처 꼼꼼히 챙겨 한 시간 전에 극장에 도착했고 언제나처럼 주변을 배회했다.

그 거리에는 모든 극장들이 모여있었다.

오래된 건물인 듯 곳곳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뚝뚝 묻어나는 극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굿즈를 진열해 놓은 곳에서 K 마음에 쏙 드는 크로스끈이 있는 에코백을 사고 좌석을 찾아 앉았다. 

가운데 통로가 없이 길게 좌석이 늘어서 있는데 신기하게도 가장자리 좌석은 이미 차 있는데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뒤늦게 가운데 자리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앞좌석과의 공간이 너무 좁아,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렬로 일어서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고 일어선 사람들도 불평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옆자리 체격이 큰 남자 관객은 공연이 시작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기까지 했다.

연극배우가 말했던 그 이글거리듯 불타는 태양은 넋을 잃을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숲속 동물들과 나무와 풀 그리고 아기심바를 들어올리는 장면의 낭떠러지까지 무대장치 하나하나가 볼수록 신기하고 놀랍기는 했다. 

어머나 세상에, 낮에 너무 많이 걸어서였나? 하필 스카가 왕을 죽이는 장면쯤에서 그만 깜박 졸았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쫒겨난 심바가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이게 얼마짜리 공연인데 조냐고 할까봐 K의 눈치를 살폈는데 모르긴 몰라도 K의 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좋은 평에 인색하던 K가 어떻게 동물 새까지 저렇게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며 보기를 잘 했다는 극찬을 가족 단톡방에 썼다.

어쩐지 그 모습이 낯설다 싶으면서 극장 밖으로 나오니 런던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건물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한결 활기차고 유쾌한 밤풍경이 펼쳐졌다.

그 곳에서 익숙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을 했다.

올려다보니 맘마미아가 공연되고 있는 노벨로 극장이었다.

그 곳도 공연이 막 끝난 모양이었다.


“우왕~ 우리, 맘마미아를 봤어야 했나봐.”


숙소로 돌아오면서 K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러네, 라이언킹은 미국거고 아바는 스웨덴출신이니 유럽 그룹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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