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관한 기록> - 코스모폴리탄의 하루
기묘함...
그리고 나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살고 싶다.
애걸하는 세상이 아니라 오직 명예로운 세상... 한 번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 사람들은 모두 다 행운과 인기를 사랑한다. 누구나 그렇겠지... 그러나 영희가 나를 돌아봤을 때 나는 한 순간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철자를 사랑한다. 문자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철자라고 말하는 것은 글씨가 너무 사소하기 때문이다. 그런 소박한 것들을 사랑하면서 시간은 더 평범해지는 것 같다. 옛날에는 한 번의 붓질로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나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다. 어느 날 이 잡지를 사들었던 순간, 내 마음은 정말로 우주가 되었고 멈출 수 없는 중력으로 혜성들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우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언제나 내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그녀의 책을 통해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최악의 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게 된다. 아히이만은 평범한 가장이었고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악질의 죄수가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너무 많은 평범한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나는 히틀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종말이 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이 일직선으로 뻗은 어떤 세계는 그렇게 어떤 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기에 불확실성이 있는 곳이 좀 더 행복한 곳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한 방향만을 쫓고 그 곳은 곧 아수라장이 된다. 지옥도가 된다.
지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평범한 상호작용 속에 모든 것이 곪게 되고 우리는 가장 무식한 사람이 되어 남 탓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굳이 무식을 자랑할 바엔 차라리 코스모폴리탄이 되고 싶다. 평범한 기체들이 왔다갔다 한다. 밑이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 식으로 정력을 소모하긴 싫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헤칠 수 있음을 명심하며... 난 그런 게 지옥이라 생각했다. 불구덩이에서 허우적대는 고통을 누리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지옥의 시나리오는 아마 서서히 죄어오는 고통이지 않을까.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인슈타인이 남기고 간 상대성 이론의 비밀을 완성해야 한다. 시간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시간도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비약적이고 함축적인 것의 신비에 주목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공화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타임 킬링용으로 책을 읽었으면 한다. 지나가는 3호선에서... 코엑스 거리를 뒤로 하며 굴러가는 버스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