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양주 노고산)
어깨가 펴지지 않는다. 몸이 땅속으로 깊숙이 박히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등에 걸린 20kg 짜리 배낭은 쉽게 몸과 하나가 되지를 않는다. 신체의 적응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평소에 내 몸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좀 더디다. 들머리인 양주 흥국사에서 출발한 지 삼십 분이 지나도 배낭은 계속 무겁게 느껴진다.
한동안 백패킹을 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캠핑장이나 짧은 산행을 선호했던 탓도 있다. 노고산(487m)은 서울 인근의 산중에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백패커들에게는 정상에서 즐기는 '백패킹의 성지' 중에 하나다. 특히나 맞은편에 자리한 북한산의 모습은 낮이나 밤이나 새로운 흥밋거리를 준다. 평소에 서울시내를 지나면서 보던 북한산의 앞모습 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쳐다보니 더 신선하고 반갑다.
일몰을 뒤로하고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친구의 배낭에 매달려 있던 랜턴을 의지하며 한동안 걸어가다가 멈추어 서고 일행은 모두 각자 헤드랜턴을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길을 밝히자마자 순식간에 주위가 깜깜해진다. 그나마 길이 외길이다 보니 특별히 정상까지 가는 길이 헷갈리지는 않는다. 출발한지 한 시간 반 만에 정상에 도착하니 벌써 다른 팀들이 설치해 놓은 쉘터와 텐트 몇 동이 보인다.
서울 인근산에서 즐기는 금요일 퇴근박이라서 사람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미 텐트 설치하기 좋은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일행도 서둘러 어둠 속에서 쉘터를 설치하고 각자 텐트를 설치한 후에도 계속 다른 팀들이 도착해서 자투리 바닥에 텐트들이 자리를 잡는다. 조용하고 한적하게 산을 즐기기는 다 틀렸지만 밝게 빛나는 보름달과 건너편 북한산 실루엣 만으로도 감성이 솟구쳐 오른다.
북한산 실루엣 만으로도
감성이 솟구쳐 오른다.
쉘터 한쪽을 개방하고 천장에 LED등을 달아놓으니 오성급 스카이라운지가 부럽지 않다. 저 멀리 휘향 찬란하게 빛나는 서울시내 야경과 뺨을 스치는 서늘한 산바람이 기분을 업시킨다. 웰컴 드링킹으로 '서울의 밤 25'과와 '테라(TERRA)'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각자의 취향대로 쭈욱 들이킨다.'캬~~~' 하는 탄성과 함께 목구멍을 통과한 하얀색 액체는 짜르르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안주로 떡볶이와 순대가 제일 먼저 손에 잡힌다. 별도의 쿠킹 없이 명동 맛집(신세계 떡볶이집)에서 공수해 온 음식이다. 시뻘건 떡볶이는 생각보다 맵지는 않고 마늘향이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감자만두를 넣은 '어묵탕'이 보글보글 끓고, 또 한쪽에서는 그리들팬에 놓인 관자 & 새우버터 구이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편안한 친구들과의 백패킹은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