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름표 ::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
지난 금요일 진저티프로젝트의 시그니처 포럼 'Tinitiative(이하 '티니셔티브')' 그 첫 만남, '청년에게 붙인 이름표'가 진행되었습니다!
티니셔티브는 진저티가 목격한 사회 변화와 현장의 지식을 공유하며, 소셜 섹터 관계자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자리인데요. 저희가 첫 주제로 ‘청년에게 붙인 이름표’를 기획하게 된 것은 내부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진저티는 최근 5년간 연구와 교육, 네트워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니트 청년,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을 만나왔습니다. 지난해 가족돌봄청년들까지 만나게 되면서 문득 “청년들을 둘러싼 문제는 중첩되고 또 심화되고 있는데, 무슨 무슨 청년이라고 이름표만 바꿔가며 돌려막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름표 너머 청년들의 진짜 목소리, 삶의 현장을 나누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이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지 시작점이라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첫번째 티니셔티브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저희 혼자서는 이 변화를 만들 수 없기에 ‘함께’ 만드는 변화의 시작에 마음 모아주실 분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
첫번째 이름표는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인데요. 영케어러는 지난해 진저티가 연구와 커뮤니티로 가장 깊이 만났던 청년들입니다. 영케어러에게 관심갖고 계신 다양한 조직의 실무자분들이 함께해 주셨는데요, 과연 첫 번째 티니셔티브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겼을까요? 영케어러의 맥락과 지원 방안을 모색한 연구자들부터 영케어러를 위한 커뮤니티를 조성한 현장의 실무자들,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 전하는 영케어러의 진짜 목소리까지 그 날의 이야기를 함께 돌아 볼까요?
[Presentation] 우리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할 이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최영준 교수)
첫 번째 발표는 연세대학교 최영준 교수님이 열어주셨어요. 여러 지표들을 통해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먼저 짚어 주셨는데요. 2021년 Pew Research Center에서 진행한 글로벌 태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돈과 건강을 우선시하며, 가족과 돌봄을 사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정말 혼자서 살아갈 수 있나요? 서로 돌보고 돌봄 받고 의지하지 않고서 정말 살아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져 주시며 화두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만큼 돌봄은 소수의 대상에게만 '혜택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가치라는 점을 이 시간을 관통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의 대상을 말함에 있어서도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누가 가장 힘드니까 혜택을 주고, 어떤 이는 덜 힘들기 때문에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경계 짓는 논의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응당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돌봄을 어떻게 하면 사각지대나 소외되는 이 없이 넓은 망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꼬집으셨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돌봄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기 위해, 현재 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의제가 바로 영케어러라는 점을 언급하시며 이 날 포럼의 의미를 짚어 주셨습니다.
[Insight] 지역 영케어러의 현실과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진저티프로젝트 홍승현 팀장)
이어진 순서는, 지역 영케어러를 만나고 연구한 홍승현 팀장님의 연구 과정에서의 인사이트를 들어 보았어요. 진저티는 지난해 충남 지역의 10대부터 30대까지 영케어러를 만나 개별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요. 연구 과정에서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다름아닌 영케어러를 발굴하는 것이었다고 전합니다. 영케어러를 찾고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연락이 닿게 되더라도 당사자 스스로 돌봄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만나더라도 돌봄 경험을 나누고 싶은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지인을 통해서 연결된 당사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런 말로 부르지 마세요. ‘가족돌봄’ 아니에요.”
연구 보고서에는 영케어러의 '삼중 빈곤'이라는 내용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시간 빈곤과 소득 빈곤을 합쳐서 이중 빈곤이라고 많이 하지만, 연구를 통해 정서 빈곤도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로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정서 빈곤의 의미는 단순히 외롭거나 우울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거 해 볼래요' 라고 손을 뻗을 힘조차 없는 상태인데요. 홍승현 팀장이 지역에서 직접 만났던 대부분의 영케어러들이 이런 상황에 공통적으로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영케어러들에게 현금 지급 프로그램과 구직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일어날 기회 자체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청년들이 기회를 잡을 힘을 먼저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인사이트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케어러 스스로 자신의 돌봄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과정,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지지관계, 지원 기관들의 협력을 통한 총체적 지원체계를 제안했습니다.
[Voice] 가족을 돌본다는 것 (지역 영케어러 복합노동 현실과 지원 방안 연구 참여자 조호근 청년)
앞서 소개한 연구의 인터뷰이였고 오아시스 크루(영케어러 자조모임)의 참여자인 조호근 청년은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4살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대학생 영케어러입니다. 현재는 부모님이 동생을 돌보고 계시지만, 언젠가 부모님 없이 동생을 돌봐야 할 때를 생각하며 동생과 함께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근 청년은 자신의 돌봄 경험에서의 어려운 점과 돌봄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부분, 영케어러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를 나누었는데요. 아래는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지원으로서 자조모임인 오아시스 크루를 언급했던 부분입니다.
“저에게 오아시스 크루는 단순히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제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꼭 거창한 고민을 나누지 않더라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돌봄 청년들의 쉼터가 지속적으로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Insight]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관계와 경험은 무엇인가? (한화생명 김향미 차장 & 월드비전 황병욱 대리 & 진저티프로젝트 박선자 팀장)
2부에서는 '오아시스 크루' 자조모임을 통해 영케어러들에게 어떤 관계와 경험이 필요한지, 자조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한 관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순서는 WE CARE 청년돌봄 캠페인을 통해 오아시스 크루를 지원해주신 한화생명 김향미 차장님이 맡아주셨는데요. 한화생명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영케어러를 지원하게 된 배경과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지원은 경제적 지원을 넘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지원'임을 발견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오아시스 크루 운영을 통해 느낀 점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청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믿을 만한 공동체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안전하게 도전하고 또 실패할 수 있을 때 이들이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 순서는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영케어러 자조모임을 연결한 월드비전의 황병욱 대리님이었는데요. 월드비전이 한화생명과 협업하여 이 사업을 기획 및 진행하기까지의 과정과 고민하셨던 지점, 앞으로의 방향을 나눠 주셨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지원하지 않고 지원이 끝나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많은 영케어러들이 자립할 수 있게끔, 저희가 돌봄의 시간을 줄여주고 자립을 돕는 콘텐츠들을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 순서로는 진저티 박선자 팀장님이 오아시스 크루를 기획하고 운영하신 과정과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오아시스 크루 운영 과정에서 여러 난관이 있었는데, 참여자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합니다. 참여자마다 돌봄의 무게가 각각 달랐고, 모임에 대한 기대 수준도 너무 달라서 참여자들의 일정과 마음을 모으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팀장님은 영케어러 커뮤니티의 퍼실리테이션에 있어 중요했던 포인트를 3가지로 전해 주었는데요. 첫 번째는 영케어러 스스로 자신이 돌봄을 하고 있다는 상황과 감정, 필요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 인식’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야만 영케어러가 정확한 시기에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돌봄 대상자를 돌보느라 정작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자신의 취향을 찾아 이후에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일상에서 벗어난 다양한 환경과 활동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한 청년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내년에는 뭔가 저를 위해 선물을 하나 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는 청년들을 지원 받는 수혜자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능동적 주체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전해주셨는데요, 스스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모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끝으로 영케어러의 상황을 행성과 중력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영케어러는 가족이라는 행성의 중력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 안에서 한 발짝 떼는 것도 정말 어려운, 행성에 강력히 매여 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 지원은 영케어러를 누르는 중력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겠고, 자조 모임과 같은 정서 지원은 이런 청년들이 가끔 다른 행성도 놀러 가보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영케어러가 건강한 자기 인식과 관점 전환을 통해서 자신들의 새로운 내러티브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돕는 고민과 지원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마쳤습니다.
[Voice] 나를 돌본다는 것 (영케어러 자조모임 오아시스 크루 참여자 신유정 청년)
마지막 순서로는 오아시스 크루에 참여했던 신유정 청년의 경험을 들어보았습니다. 유정 청년은 “저의 꿈은 미래의 사회복지사, 신유정입니다.”라는 인사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오아시스 크루를 통해, 나를 돌보는 시간이 스스로를 꿈꿀 수 있게 한다는 발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도 좋았고, 저와 비슷한 상황의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으며 제가 나중에 사회복지사가 된다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래 청년들과 잘 지내려고 했었습니다. 사실 스트레스가 많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기도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과 제 마음의 오아시스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저를 좀 더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모든 세션이 마무리되고 이날 포럼에 참여해 주신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았는데요.
하자센터의 이충한님은 “한국 사회에서는 ‘꿈꿀 수 있는 것도 자본이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하는데, ‘꿈’보다는 ‘희망’ 정도로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모든 걸 끊어내야 하는 어떤 절망의 상태가 아니라, 연결돼 있고 조금은 희망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임팩트리서치랩의 유예솔님은 “'영케어러분들께 필요한 자원이 결국은 한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과 같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 했는데요. 우리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왔고 앞으로 돌봄을 할 수도 있는데, 영케어러분들도 그런 분들처럼 바라보는 게 사회에서 되게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저도 연구하면서 돌봄이나 돌봄과 관련된 대상자분들, 청소년 부모나 이주배경 아동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을 만날 때 어떤 태도로 다가가고 만나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 이예도님은 “아름다운가게에서도 가족돌봄청년 발굴 사업을 기획 중에 있어요. 저희는 ‘청년분들이 아동인 시절부터 지원 체계가 있었으면 이분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관점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동들을 발굴할 때 아동들이 갖는 특성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실무자로서, 기획자로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그렇게 용어를 규정하면 손가락 사이로 또 빠져나가는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더 포괄적인 관점을 바라보고 좀 더 많은 분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그런 사업을 기획을 해야겠다, 그런 사업을 만들어야겠다는 큰 인사이트를 얻고 갑니다.”
3시간 정도 이어진 긴 시간이었지만 참석자분들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해서 불이 짚여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열기가 지속되어 그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 또 이 글을 읽어주실 관계자분들과 함께 새로운 돌봄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음 티니셔티브는 또 어떤 인사이트와 변화의 시작점을 만들어갈까요? 하반기에 이어질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티니셔티브의 두 번째 이름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마치면서 이날 행사에서 함께 들었던 노래 ‘Not A Dream(송소희)’의 가사 일부를 전해 드려요.
나의 안식이 기다리지
있나 내게도 드디어
구름곶 너머 꿈이 아니야
나의 날 온 거야
마음을 놓아
이곳에서 날 불러
눈물은 닦고
달려온 나의 저 길을 바라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