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주더비
과학대회와 축구, 같은 교사지만 전혀 다른 감정
이 감독은 과거에도 수많은 과학대회를 지도했다.
학생들과 밤늦도록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포스터를 수정하며, 논문을 검토했다.
대회 전날이면 초조하게 발표 연습을 지켜보며 수정할 부분을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대회 당일, 학생들이 심사위원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마치고,
드디어 수상자로 호명되는 순간.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이 감독을 바라봤을 때,
그들의 눈빛에는 "해냈다!"라는 벅찬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때마다 이 감독은 깊은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지도한 학생들이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는구나.’
그들의 성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눈물까지는 아니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축구는 달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온몸으로 기쁨을 폭발시켰다.
이 감독 역시 두 팔을 활짝 벌려 선수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선수들의 땀에 젖은 유니폼이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쳤다.
훈민이가 "감독님! 해냈어요!!"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고,
정우가 "감독님, 우리 진짜 대박이죠?!"라며 이 감독을 꽉 껴안았다.
누군가는 헬멧처럼 감독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닦으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이 감독은 깨달았다.
과학대회에서의 성취는 지켜보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함께 싸우고, 함께 울고, 함께 끌어안는 감동이 있었다.
그 차이가 확실했다.
과학대회에서의 감동은 잔잔한 물결처럼 스며들었다면,
축구에서의 감동은 거대한 폭풍처럼 몰아쳤다.
모든 것이 온몸으로 부딪히고, 가슴 깊이 박혔다.
같은 교사지만,
과학을 지도할 때와,
축구 감독으로 아이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할 때,
그 감정의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이 감독은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폭우 속에서 펼쳐진 신제주 더비, 마지막 승부
결승전 날, 하늘은 온종일 어둡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빗속에서도 운동장의 배수 상태는 완벽했고,
신제주의 두 강호, 제주일고와 우리 팀이 우승을 놓고 격돌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제주의 자존심을 걸고 싸운다."
서로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서로가 누구보다 잘 아는 상대.
첫 번째 기회를 잡은 건 제주일고였다.
우리 진영을 깊숙이 파고들어 강력한 슛을 날렸다.
"쾅!"
공이 골대를 강타하며 튕겨 나갔다.
순간, 이 감독도 선수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신 차려! 수비 집중해!"
이 감독이 외치며 공격수들에게 수비 가담을 지시했다.
우리도 반격에 나섰다.
훈민이 과감하게 슛을 시도했지만,
상대 골키퍼의 손끝에 걸려 득점은 실패.
전반전, 득점 없이 마무리.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후반전, 태양이 다시 뜨다
놀랍게도, 후반이 시작되자 하늘이 열렸다.
폭우는 멎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양 팀은 전반보다 더 거칠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이 불발되었다.
훈민이 땅을 치며 아쉬워했고,
정우는 헛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연장전까지도 무득점.
이 감독은 옆에서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긴장이 극에 달했다.
또다시 맞이한 운명의 승부차기
"승부차기다!"
선수들은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숨을 골랐다.
우리의 골키퍼 도율이, 그리고 상대 골키퍼.
누가 더 강한 멘탈을 갖고 있는가?
첫 번째 키커 성공.
두 번째 키커 성공.
숨 막히는 공방이 계속됐다.
그리고, 제주일고의 네 번째 키커가 나섰다.
강하게 찬 슛이 하늘로 솟구치며
"쾅!"
골대를 때리고 벗어났다!
우리 선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건우가 성공하면 우승이었다.
건우는 침착했다.
짧게 숨을 들이쉬고,
골키퍼의 움직임을 읽으며 정확히 골문 구석을 찔렀다.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제주일고의 다섯 번째 키커.
도율이는 골라인에 선 채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상대 키커가 호흡을 가다듬고,
강하게 슈팅을 시도했다.
도율이 몸을 날렸다.
"팡!"
손끝에 맞고 공이 밖으로 나갔다.
순간, 우리 벤치에서 터지는 함성!
선수들은 서로를 껴안고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우리가 해냈다!
교육감배 우승, 전국대회 진출!
우승의 기쁨, 그리고 새로운 도전
경기가 끝나고,
제주일고 선수들과 우리 선수들은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치열한 승부였지만, 아름다운 라이벌전이었다.
"같이 사진 찍자!"
두 팀은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겼다.
그리고 우승 세리머니.
주장 성현이가 외쳤다.
"이 감독님, 올라오세요!"
선수들이 이 감독을 번쩍 들어 올려
행가래를 치기 시작했다.
"우승이다!! 전국대회다!!"
선수들은 목이 쉬도록 함성을 내질렀다.
이 감독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전국대회에서도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