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팀
12장. 우리는 한팀
전국대회 4강전. 상대는 경기 광주고. 기록상 경기 광주고는 최강의 우승후보였다. 4:0, 7:0, 4:0. 사실상 무결점의 팀. 핵심 22번 선수가 공격의 히든카드였다. 역시 이 선수를 잘 막아야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감독.
4강전, 우리 팀은 늘 하던 루틴으로 준비했다. 질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태양빛 아래서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었고, 서로 이야기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최강의 두 팀이 맞붙은 경기답게 치열한 흐름이 전개되었다. 중원 싸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고, 우리 팀은 광주고 22번을 철저히 봉쇄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전반 초반 우리 골문 근처에서 벌어진 경합에서 수비진이 완벽히 클리어하지 못하며 첫 실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은 더욱 집중하며 반격을 노렸다. 그러나 또다시 수비 불안으로 인해 실점하며 2:0으로 끌려가는 상황. 만회하기 위해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수비 라인을 올리던 광주고의 뒷공간으로 연결된 패스를 정우가 빠른 스피드로 받아냈다. 상대 골키퍼와 1대1 상황. 정우는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2:1을 만들었고, 우리는 희망을 품고 전반전을 마쳤다.
벤치로 돌아온 아이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할 수 있다!" 서로를 격려하며 결의를 다졌다.
이어진 후반전, 우리는 초반부터 광주고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상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강력한 왼발을 가진 현석이가 준비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날아간 볼은 예리한 궤적으로 골문 구석을 흔들었다. 2:2!
경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우리 팀은 기세를 타며 공세를 퍼부었고, 광주고도 강력한 압박으로 응수했다. 경기장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하지만 또다시 수비 지역에서 완벽한 클리어링이 되지 않으며 광주고에게 공이 넘어갔다. 반 박자 빠른 슈팅이 골망을 흔들며 3:2.
점점 초조해지는 우리 팀. 선수들은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 공격을 퍼부었다. 윙백 주원이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끝내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주심의 종료 휘슬이 경기장을 울렸다.
경기는 끝났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전국대회 결승 무대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깊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시상식에서도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짐을 챙겨 숙소로 돌아왔다. 경기는 졌지만, 우리는 강했다. 마지막 밤, 선수들은 숙소 거실에 모여 앉았다.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모두가 침묵 속에 각자의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몇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고, 어떤 아이들은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아이들끼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승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2:0까지 밀릴 때는 무너질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따라가면서 싸운 거… 나 진짜 자랑스러워." 그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경기 광주고가 완벽한 팀이라 했는데, 우리가 몰아붙일 때는 그들도 당황하더라." 정우가 말했다. "내가 넣은 골, 사실 경기장에서는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영상 다시 보면 괜찮지 않았냐?"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아니지, 오늘 하이라이트는 현석이 형 프리킥이지." 건우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거 딱 들어갔을 때, 진짜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현석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지만, 아이들은 계속해서 그의 슛을 칭찬했다.
반면, 주원은 여전히 아쉬운 듯 했다. "마지막 10분… 진짜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조금만 더 집중했으면, 더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싶어."
"야, 주원아. 너 오늘 윙백으로 진짜 미친 듯이 뛰었어. 그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 보훈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네가 없었으면 공격 전개도 제대로 못 했어. 진짜 고생했다."
"그리고 도율아, 실점한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성현이 골키퍼 도율에게 말했다. 도율은 내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성현의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네가 없었으면 더 많은 골 먹었을 수도 있어. 그 슈팅 막은 거 몇 개나 되는지 알아?"
"그래, 솔직히 우리 수비도 완벽하지 못했어. 너만의 책임 아니야." 훈민도 거들었다. 도율은 여전히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동료들의 위로에 살짝 웃음을 보였다.
이 감독은 한 발짝 떨어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이 패배가 그들에게 좌절이 아니라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일부러 개입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민준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 진짜 기적 같은 시간이었어. 우리가 도대회 우승해서 전국대회까지 오다니. 그리고 여기서 4강까지 왔다는 게… 난 우리가 자랑스러워."
모두가 조용히 그의 말을 곱씹었다. 패배의 아쉬움이 가슴 속 깊이 남았지만, 동시에 그동안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더 강해지자." 승우가 손을 내밀었다. "이 순간 잊지 말고, 내년에는 더 높이 올라가자."
아이들은 하나둘씩 그의 손 위에 손을 포개며, 결의를 다졌다. 패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감독도 입을 열었다. "너희들 덕분에 정말 좋은 팀이 됐고, 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성장했다는 거야. 너희는 정말 자랑스러운 선수들이야."
서로를 격려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 패배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혼자일 때보다, 한 팀일 때 더 강했다.
버스는 천천히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 아직 이른 아침이라 도시의 거리는 한산했지만, 내 마음속은 여러 감정으로 뒤섞여 있었다.
이 감독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고 푸른 하늘. 이곳에서 보낸 며칠 동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전국대회. 그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 무대. 우리는 그 무대에서 최강팀과 맞섰고, 치열하게 싸웠으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4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과학교사인 내가 다시 이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처음 축구부를 맡았을 때, 이 자리까지 올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순히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성장하는 과정이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팀을 보며, 나 역시 진심으로 이 무대에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 대회는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기도 했다. 경기 광주고를 상대로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3:2. 그 한 골 차이가 우리를 결승으로 보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이 감독은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지도자로서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을까? 마지막 10분, 전술적으로 더 날카로운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상했다. 패배의 아쉬움 속에서도, 내 안에서는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팀은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다시 도 대회를 준비할 것이고, 다시 전국대회를 노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무대의 정상에 설 것이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피곤한 몸을 쉬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번 패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 감독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할 것이고, 또다시 강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 더 완벽한 수비, 더 정교한 전술, 더 강한 멘탈.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 길을 다시 한 번 걷고 싶었다.
버스는 김포공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면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훈련들은 결국 우리를 다시 이 무대로 이끌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패배의 아쉬움과 새로운 도전의 의지가 뒤섞인 감정 속에서, 내 마음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