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도 사회학적 시선이 필요한 이유
질병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와 상반되는 개념인 건강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마침 수강하고 있는 '의료와 건강 불평등' 수업에서 첫 주차 주제로 건강에 대한 정의에 관한 몇 가지 논의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김중백(2013)의 논의에서는 건강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신체에 결함이 있거나 없는 정의를 떠나 개인이 살아가는 구조적, 역사적 맥락 속의 집합적 속성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의 초반 언급된 것처럼,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을 “단순한 질병이나 신체적 쇠약함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감의 상태”로 정의한 만큼 ‘건강은 단순히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정도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안녕감을 포함하는 삶의 종합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김중백, 2013;123). 개인의 사회적, 정신적 안녕감은 여러 건강 지표(신체적, 정신적)에 따라 측정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나, 개인적인 수준의 건강 지표, 그리고 생물학적인 결함만 살필 경우 질병과 같은 건강 문제의 원인과의 인과관계는 측정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이 속한 사회문화적인 맥락 – 가족, 인간관계, 주변 환경, 직업, 교육, 젠더, 역할규범 등- 을 분석함으로써 누가, 어떤 원인으로 인해 건강 불평등이 야기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사회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신뢰성 있는 지표로서(p.126) 환자에게 개인적 주관평가를 실시하게 하는 것은 의사가 환자를 진단해버리는 권위적인 진단에서 벗어난 시도이지만, 당사자의 발화나 내러티브를 통해 단순히 ‘증상의 진단’ 뿐만 아닌 환자의 인구사회학적인 ‘상황을 진단’하는 것이 보건학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과 의료에서 사회학적 시선이 필요한 이유는 당장의 불편함 및 비- 건강한 상황을 해소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원인 및 ‘상황을 진단하여’ 질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1948 년 WHO 에서 정의한 위 건강에 대한 논의에 대한 반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총체적인 (완전한)’ 건강의 상태란 무엇이며 (누구의 기준이며), 안녕감 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와 같은 비판이 대표적이다 (Leonardi, 2018). Krahn et al. (2021) 역시 기존의 정의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감을 이룬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라는 이분법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만성질환자들의 경우 이들의 건강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시한다. 다운 증후군이 있는 수영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그녀의 장애 때문에 건강하지 못 한걸까? 양극성 인격장애 때문에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교사는 그의 정신 질환 때문에 건강하지 못 한걸까? 이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건강의 정의는 바꿀 수 없는, 또는 만성적인 질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균형’과 ‘적응’을 통해 조절 한다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은 단순히 신체적인, 혹은 생물학적인 기능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사회, 심리적인 환경과의 ‘균형’과 ‘적응’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균형’과 ‘적응’의 정의 역시 ‘총체적인 상태’와 같은 모호함을 비판할 수 있다. 질환이 있어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 개인이 ‘적응’하여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정크푸드를 매일 먹어도 당뇨 및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인가? 또는 주변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해나 접촉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정신질환 환자가 자신의 무지 때문에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는 불건강한 것인가? 이들이 주장하는 ‘균형’ 및 ‘적응’은 약물이나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균형을 맞춘 상태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부가적인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WHO의 건강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넘어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있는 한편, 어떤 이들은 건강에 있어 형평성(equity)의 문제를 논의한다. Sen(2002)은 건강 불평등과 관련해 평등한 (equality) 건강 정책보다 형평성(equity)이 강조되는 건강 정책을 고려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모두가 동등한 치료와 자원을 받는 것으로서 건강 불평등 (inequality)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건강 형평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 형평성을 위해 다양하게 고려해야 될 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건강은 인간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건강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을 성취하는 것과, 건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 내지는 가능성 (capability)을 갖는 것은 다른 것인데, (2) 그 능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성취라는 결과보다 중요하다. (3) 단순하게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보다, 재화가 어떻게 분배되고 사회가 어떻게 계획되어 되어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동등해야 한다고 하는 점을 가정할 때, 우리는 비슷한 생물학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A 와 B 중에 A 가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에 그가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In general, in the making of health policy, there is a need to distinguish between equality in health achievements (or corresponding capabilities and freedoms) and equality in the distribution of what can be generally called health resources.” (Sen, 2002, p. 663)] 정책을 만들 때 건강을 성취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action 외의 한 개인을 대표하는 부분들- 기질, 특성, 배경, 문화 등-을 고려해 평등한 건강 수준에 다다르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 문화적인 속성에 배태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젠더, 계급, 환경(도시), 지식, 교육 등이 그러하며 그것을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 사회학자이다), 사회 정의를 위한 건강을 위해서 사회학적인 눈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Krahn, G. L. et al. 2021. “It’s time to reconsider how we define health: Perspective from disability and chronic condition.” Disability and Health Journal, 14: 101-129.
Leonardi, F. 2018. “The definition of health: towards new perspectives.”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48(4): 735-748.
Sen, A. 2002. "Why health equity?" Health Economics, 11: 659-666.
김중백. 2013. “사회학의 눈으로 바라본 건강.” 계봉오 외. 『인구와 보건의 사회학』, 7장. 다산출판사.